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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만 강한, 열대의 그녀

Posted May. 07, 201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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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만()에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업도시 주베일. 한 달에 두세 번씩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모래바람이 엄습하고, 1년에 7개월 이상 낮 기온이 50도를 웃돌아 웬만한 성인 남성도 버티기 힘든 곳이다. 현대건설 권혜령 대리(32)는 이곳에서 22개월간 가스처리 시설에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고 사업일정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는 6000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사우디 현장에서 유일한 여성. 최근 현장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권 대리는 2년 군복무를 마친 기분이라며 현지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여직원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10월경 다시 사우디아라비아의 또 다른 건설현장으로 나가 모래바람과 불볕더위와의 전쟁을 치를 예정이다.

제2의 황금기를 맞고 있는 해외건설 현장에 여성인력의 진출이 활발하다. 그동안 해외 현장은 여성들의 활동에 제약이 많은 중동지역에 밀집한 데다 통제된 조직생활을 해야 하고, 수십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다국적 건설공사 인력을 다뤄야 하는 업무 특성 등으로 금녀()의 영역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업체의 수주지역이 다양해지고, 공사 내용도 토목이나 건축물 시공 일변도에서 벗어나 설계나 자재구매, 사업관리 등으로 확대되면서 여성 특유의 꼼꼼한 관리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해외 건설현장에 나가 있는 여성직원은 약 50명. 현대건설의 권 대리와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의 강채리 기사(27), GS건설의 신근해 차장(40), 포스코건설의 강혜원 기사(25) 등이 대표선수 격으로 이들은 각각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페루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이들은 업무적인 어려움보다 현장에서 여성이라는 특수성을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2010년 6월부터 아랍에미리트 루와이스 석유생산시설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GS건설 신 차장은 현장에 여자가 드물다 보니 파견 초기엔 현장 근로자들이 저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쳐다봐 힘들었다며 아랍에미리트에서 다른 현장으로 출장을 갈 때에는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차별도 겪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16개월째 싱가포르 해안고속도로 현장을 누비는 삼성건설의 강 기사는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여직원에 대한 오해로 이어질까봐 항상 긴장하게 된다며 이런 이유로 업무성과를 내기 위해 다른 직원보다 몇 배 더 애를 쓰게 된다고 귀띔했다.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은 해외 현장에서 이겨내야 할 장애물 중 하나다. 현장에선 고민을 털어놓을 동성 친구를 찾기가 어렵고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입사 3개월 만인 지난해 3월부터 페루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에서 스팀터빈 시공 업무를 맡고 있는 포스코건설 강 기사는 가급적 자주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해 부모님, 친구와 연락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소개했다.



송충현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