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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코미디 vs 블랙 코미디

Posted December. 16, 200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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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극장. 웃다가 죽어보시겠습니까라는 광고 문구에 끌려 트로픽 썬더를 보고 나온 대학생 김지은(24) 씨는 졸다가 죽을 뻔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상영시간 내내 몸을 비틀며 웃음을 그치지 않은 앞자리 남자를 김 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을 웃기는 코미디는 없다. 최근 차례로 한국을 찾은 두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도 찬가지. 17일 개봉하는 예스 맨과 11일 개봉한 트로픽 썬더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반응이 엇갈리는 영화다. 주연 짐 캐리와 벤 스틸러의 서로 다른 스타일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스 맨은 갱생() 코미디 영화다. 성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한 단계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 행복을 얻는 스토리. 짐 캐리의 이전 출연작 라이어 라이어 브루스 올마이티를 조연 배우만 바꿔 변주한 느낌이다.

은행 대출상담 직원 칼 앨런(짐 캐리)은 3년 전 이혼했다. 우울함에 찌들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새로운 여자는커녕 오랜 친구도 만나지 않는다. 평생 혼자 살 거냐는 친구의 호통에 정신을 차리고 성격개조 프로그램 강좌를 찾아 매사에 예스를 외치는 남자로 변신한다.

실연의 아픔을 비관하며 지내다가 마음을 바꿔 6개월간 무조건 예스로 답했다는 영국 방송 PD 대니 월리스의 자전 소설이 원작이다. 이런 줄거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짐 캐리의 현란한 개인기다. 14년 전 에이스 벤추라 마스크와 비교하면 강도가 약하지만 고무찰흙처럼 변하는 표정 연기는 놀랍다.

자극 없이 편안하게 웃고 즐길 볼거리로는 적절하다. 하지만 흐뭇한 휴먼스토리를 심심해하는 관객은 낯간지러워하며 하품만 할 수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팬이라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예스를 외치라고 설파하는 강렬한 눈빛의 노인 강사를 눈여겨볼 것. 카리스마 넘치는 이 노인은 1980년 슈퍼맨2에서 악당 조드를 연기한 테렌스 스템프다.

벤 스틸러의 트로픽 썬더는 험악한 조롱으로 가득 찬 영화다. 예스 맨처럼 착한 (척하는) 영화를 시작부터 비웃는다. 개봉예정작 예고편처럼 나오는 세 편의 짤막한 클립이 이 영화의 백미. 안이한 복제를 거듭하는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를 웃음거리로 삼는다.

플래툰에서 일리아스(윌럼 데포)가 하늘로 팔을 뻗으며 죽는 장면을 패러디한 데 이어 지옥의 묵시록 블랙 호크 다운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걸작 전쟁영화를 가차 없이 난도질한다.

벤 스틸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영화 태양의 제국에 단역으로 출연할 때 배우들이 전쟁영웅처럼 얘기하는 게 정말 우스웠다고 말했다. 그가 트로픽 썬더에서 풍자하는 대상은 자아도취에 빠진 할리우드 배우와 영화산업이다.

하지만 벤 스틸러의 코미디는 진지한 비판의식을 넘보지 않는다. 트로픽 썬더는 대머리 뚱보로 분장한 톰 크루즈의 배꼽춤을 보여주며 그냥 웃자고 한 얘기로 막을 내린다.

18세 이상 관람가인 이 영화에는 성적인 농담, 배가 갈려 내장이 터져 나오고 잘려나간 손과 머리가 굴러다니는 잔인한 장면이 넘쳐난다. 블랙코미디에 익숙한 관객은 웃음을 참지 못하지만 비위 약한 관객은 견디기 힘들다.



손택균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