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투 장면을 그린 국내외 작품 가운데 가장 세밀하게 묘사된 울산성 전투도 병풍 세 틀(총 18폭17, 18세기 일본에서 제작)이 곧 국내에 들어온다. 특히 이 중 두 틀은 존재 자체가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다.
이 병풍은 임진왜란 막바지 최대 승부처였던 13일간의 울산성 전투(1597년 12월 23일1598년 1월 4일) 장면을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해 사료 가치가 큰 데다 일본인이 그린 조선의 승전도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미술관(관장 전윤수)은 25일 일본 도쿄()의 한 소장가 컬렉션에서 이들 병풍의 존재를 새로 확인했으며 세 틀을 모두 구입해 8, 9월경 국내로 들여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 틀 가운데 하나는 1999년 국립진주박물관이 일본에서 빌려와 전시한 적이 있지만 나머지 두 틀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존재 자체를 몰랐던 작품이다. 전 관장은 울산성 전투에서 일본이 패했다는 점 때문에 일본인 제작자나 소장자들이 부담을 느껴 공개를 꺼려 온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 작품은 1597년 조선에 급파됐던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이 울산성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간 뒤 각종 기록과 증언 등을 토대로 17, 18세기경 제작한 것이다. 병풍 하나의 크기는 세로 173cm, 가로 375cm. 일본인이 그린 작품이지만 임진왜란 전투도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세밀해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울산성은 1597년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북진이 막히자 남해안에 주둔할 목적으로 1만6000여 병사를 동원해 지은 일본식 성곽이다. 당시 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5만여 명은 울산성을 완전히 포위해 일본군 1만6000여 명을 철저하게 고립시켰고 이로 인해 왜군들은 흙을 끓여 먹고 말을 잡아먹으며 지내야 했다. 6만여 명의 왜군 구원병 때문에 조-명 연합군은 물러났지만 가토 기요마사가 도주하는 등 실질적인 왜군의 패배로 이어져 임진왜란을 종결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새로 공개된 병풍 두 틀 가운데 하나는 수천 명의 조선군과 명군이 말을 타고 울산성으로 질서정연하게 진격해 들어가고, 왜군이 성곽 주변에서 방어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또 다른 6폭 병풍엔 조총과 장검 등으로 무장한 왜군에 밀려 조선군과 명군이 퇴각하는 장면이 매우 세밀하고 긴박하게 묘사되어 있다. 조-명 연합군과 달리 왜군은 소속 가문에 따라 서로 다른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1999년 공개된 병풍은 조-명 연합군이 수십 겹으로 울산성을 포위해 왜군을 고립시키는 장면이 담겨 있다. 울산성 안에서 왜군이 말을 잡아먹는 장면까지 나올 정도로 상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