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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가 김리혜씨 하얀 도성사 무대에

한국무용가 김리혜씨 하얀 도성사 무대에

Posted October. 19, 2005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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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게 부서지는 장고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하얀 춤사위. 부부는 눈빛으로 미세한 호흡을 주고받으며 흐드러지는 장단의 곡예를 탄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지하 연습실에서 만난 한국무용가 김리혜(52)는 복 받은 춤꾼이다. 한국 최고의 장고 명인 김덕수(52)가 남편인 덕에 연습실에서도 CD반주가 아닌 펄펄 살아 뛰는 가락에 춤을 춘다.

덕수 씨는 예술의 정수인 장단을 치는 사람인만큼, 제가 안 가 본 길을 가게 해줄 것 같았어요. 처음엔 1년만 한국 춤을 배우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한의 춤사위로 풀어낸 의 차이

재일교포로 태어나 일본에서 잡지사 기자를 하던 김씨는 1981년 한국으로 왔다. 도쿄에서 우연히 본 한국 춤에 매료돼 더 이상 일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한국에서 김덕수에게 장고가락을 배우는 한편 이매방 선생 문하에 들어간 이듬해, 동갑내기 스승이던 김덕수와 결혼했다. 이후 94년 해외동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춤 이수자로 선정됐고, 98년에는 무형문화재 27호 승무의 이수자가 됐다.

20여 년간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연에서 잠깐씩 승무나 살풀이를 춰왔던 김리혜는 최근에야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춤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다음달 35일 오후 7시 반 서울 호암아트홀 무대에 올리는 하얀 도성사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한국무용가가 된 김리혜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김리혜의 독무이지만 음악은 남편 김덕수와 일본 전통 타악 연주자 센바 키요히코가 함께 만들었다.

센바 씨가 한국 예술에 담긴 한()의 정서가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한()이란 글자는 일본에서는 원한, 원망이라는 의미가 크지만, 한국에서는 단순한 원한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슬픔, 간절함, 애절함 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랬더니 아! 그렇다면 도성사를 공연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도성사는 일본 고서기()에 나오는 설화로 노(), 가부키()로 자주 공연되던 소재.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자를 그리워하던 여인이 뱀으로 변해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김리혜는 이 설화를 한국적으로 해석해 한을 풀어주고 화해와 상생으로 이끄는 춤을 춘다.

한국 장단과 일본 노의 결합

하얀 도성사에서는 김리혜의 춤 외에도 김덕수가 이끄는 한국팀(6명), 센바가 이끄는 일본팀(7명)이 만들어내는 양국 전통음악의 어울림이 백미다. 대금과 아쟁으로 연주되는 시나위 반주, 동해안 오귀굿 음악, 승무의 북가락, 경기도당굿 등 한국의 화려한 장단과 일본 노 음악의 자로 잰 듯한 형식미를 결합하는 실험적 시도다.

일본음악에는 장단 개념이 없습니다. 반면 우리는 전 세계에서도 전무후무한 36박, 42박의 화려한 장단이 있지요. 센바 씨하고는 25년간 함께 작업해왔습니다만, 늘 서로 기운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서로의 합의하에 맞지 않는 미세한 부분은 서로 양보하며 상생을 추구했습니다.(김덕수)

일본 춤은 마치 사진을 찍듯이 장단을 잠깐씩 멈추고,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형식미를 추구하지만 한국 춤의 장단은 끊이지 않고 흐르며 속에 있는 것을 풀어내지요. 일본 춤은 직선으로 호흡을 내뱉는 데 비해 한국 춤은 곡선처럼 호흡을 감아도는 게 특징입니다. (김리혜)

한일수교 40주년 기념공연인 하얀 도성사는 다음달 일본 도쿄의 신 국립극장을 비롯해 오사카, 나고야, 기타큐슈 등에서도 공연된다. 02-2232-7952



전승훈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