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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초등학교 삼권분립

Posted March. 09, 200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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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새 학기를 맞아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학우들을 위해 발로 뛸 참 일꾼을 뽑는 선거가 한창이다. 학급별로 반장을 뽑고, 전교 어린이회를 구성하는 동안 자녀들의 입신출세를 응원하는 치맛바람도 거세지고 있다. 옛날에는 담임선생님이 공부 잘하거나 유력 학부모의 자녀를 일방 지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통하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은 이번 학기 들어 아예 모든 어린이가 돌아가면서 하루 또는 일주일씩 학급 임원을 맡도록 권고했다.

어린이 선거라고 얕잡아 볼 수는 없다. 기성 정치판 못지않은 캠페인이 벌어지고 대권 후보 못지않은 이미지 전략도 구사한다. 세태를 반영하듯 초등학교에서도 여성 후보들이 더욱 적극적이고, 여학생 표심의 풍향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곳이 많다. 교내 텔레비전방송을 통한 합동유세와 정견발표는 기본이고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곳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학교선거도우미 제도를 도입해 각급 학교의 요청이 있을 경우 투표함과 기표소 등을 제공한다.

서울 노원구 공릉2동 화랑초등학교는 17년째 화랑어린이나라라는 독특한 어린이회를 운영해 오고 있다. 학급별로 회장 부회장 국회의원 법관을 선출하고 1, 2학년을 제외한 전교생이 직선으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학급 국회의원과 법관들은 별도의 회의를 열어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을 뽑아 대통령을 견제하도록 한다. 며칠 전 아들이 법관으로 선출된 학부모는 아이들 간에 발생한 분쟁의 시비를 가리고 담임선생님께 아이들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것이 주된 임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어느 누구도 권력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견제와 균형의 삼권분립 원리를 익히게 된다.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감당하기 어려운 학교 이전 같은 문제를 들고 나왔다가는 역풍을 맞게 된다는 교훈도 얻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초등학교에서 헌법재판소장도 뽑고, 이 자리가 가장 부러움을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