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무안참사 진상규명 지연시킨 국회

Posted December. 09, 2025 08:14   

Updated December. 09, 2025 08:14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숨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였다. 1주기가 다 되어가지만 사고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이달 초 공청회를 열고 중간조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유족 반발로 무산됐다. 유족들이 반발한 건 참사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토부 소속인 사조위 ‘셀프 조사’는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유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요구했다. 사고 약 열흘 만에 사조위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고, 여야 모두 국토부로부터의 독립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런데 개정안은 이달 초에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첫 관문 통과에 11개월이나 걸린 건 국토위 논의 과정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온 탓이었다. 사조위 독립 시 조사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저하되고 정부 조직의 원칙을 흔들 수 있다는 신중론이었다. 이런 주장을 편 위원 발언의 행간을 살펴보면, 유족 요구에 떠밀려 국토부 조직을 떼어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읽혔다.

물론 정부 조직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사조위의 태생적 한계를 바로잡는 일이다. 2002년 설립된 사조위의 사고 조사 업무는 국토부 장관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인사나 예산 등은 국토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다. 사조위 위원 12명 중 2명인 상임위원은 국토부 고위공무원 몫이다. 항공 정책이나 규제 관련 부처와 완전히 독립된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 의회 직인 캐나다 교통안전위원회(TSB)와 비교하면 반쪽짜리 독립에 가깝다. 10년 전 국토부 산하 한국교통연구원조차 사조위 중장기 발전계획 보고서에서 “국토부에 대한 사고 조사의 객관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게다가 이번 참사와 관련해 국토부와 사조위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인 상황이다. 국토부는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이 참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자 한동안 “규정상 문제가 없다”며 면피하는 데 급급했다. 사조위는 7월 조종사 과실로 해석될 만한 설익은 내용을 발표했다가 논란을 자초했다.

국토부 산하 사조위는 유족 측 표현을 빌리자면 ‘잘못 끼운 단추’였다. 십수 년째 침묵하다가 독립기구 논의에 업무 전문성과 정부 조직 혼란 우려를 이유로 반대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오해만 살 뿐이다.

뒤늦게나마 사조위 독립기구 출범이 첫발을 뗐지만,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등 남은 절차를 속전속결로 진행되더라도 조사 지연은 불가피하다. 개정안에는 법 시행 즉시 기존 사조위 임기를 종료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새 사조위를 꾸리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사조위 독립 법안을 발의한 위원은 국회 상임위 첫 회의에서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며 조속한 법안 처리를 강조했다. 일부 의원의 안일한 인식 때문에 진상 규명은 더욱 미뤄졌고 유족들에게 고통의 시간만 길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