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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없는 묻지마 규제 영유아 사교육 못 막는다

대안 없는 묻지마 규제 영유아 사교육 못 막는다

Posted November. 13, 2025 07:53   

Updated November. 13, 2025 07:53


경기도에 사는 엄마 김모 씨는 내년 4세가 되는 2023년생 딸을 영어유치원, 놀이학교, 어린이집 중 어디에 보낼지 고민이다. 애초 김 씨는 내년에 놀이학교로 불리는 학원에 보낼 생각이었다. 100만 원을 훌쩍 넘는 원비는 부담스럽지만, 영어와 한글 등 여러 수업을 하니 5세 영어유치원 입학 전 좋은 징검다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주변 놀이학교 몇 곳이 최근 없어진 것을 알았다. 주변 엄마들이 말하길 요즘 영어유치원 최초 입학 나이가 4세로 낮아지며 놀이학교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둘 다 비용은 비슷한데, 영어에 더 빨리 투자하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몇몇 영어유치원에 문의하니 4세반을 내년 3월에 시작하는 곳이 있었다. 김 씨는 “기저귀도 못 뗀 아이가 책상에 앉아 연필을 쥐고 영어로 수업 듣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년도 유치원 일반모집 접수를 앞두고 상당수 4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영어유치원에 보낼지 고민 중이다. 저출생 시대이지만 영어유치원 설명회는 문전성시다. 올해는 3세 자녀를 둔 부모들도 많이 합류했다.

영유아 사교육을 잡겠다며 교육부는 영유아 사교육 대책팀을 꾸리고, 정치권에서는 레벨테스트를 막는 법안까지 발의하고 있다. 그래도 영어유치원 관련 사교육은 비웃기라도 하듯 몸집을 점점 불리고 있다. 서울 강남 유명 영어유치원은 정부가 레벨테스트를 단속하자 레벨테스트 없이 같은 계열사 내 18개월부터 입학할 수 있는 영어학원 출신만 받기로 했다.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합격시키고 싶은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도 등장했다. 유명 영어유치원에 합격시킨 비결을 선배 엄마가 가르쳐준다고 한다. 한 엄마 강사는 “영어유치원에 보낼지 고민만 하다 지원 시기를 놓칠까 불안했다”며 “엄마 정보에 따라 아이 대학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영유아 사교육을 막으려는 정부 의지와 달리 부모가 점점 더 빨리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이의 발달 속도는 빨라지는데 누리과정은 단조롭고 교사 1명당 아이 수도 많아 맞춤식 교육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대표적이다. 유아의 전인 교육을 위해 국가가 만든 표준인 누리과정은 놀이를 통한 발달을 추구한다. 취지는 좋지만 교육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

저출산 시대라지만 입시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부모들은 ‘뭐라도 하나 빨리 배우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도 아기인데…’ 하는 부모를 겨냥한 한글 과외, 놀이 체육, 퍼포먼스 미술 등 사교육도 많아지고 있다.

교육부는 영유아 사교육을 ‘학부모 불안을 자극하는 장사’, ‘아이 건강을 해친다’ 등으로 비판한다. 새로운 법을 통한 규제, 지속적인 단속, 행정 지도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부모가 왜 기저귀 찬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려는지, 국가가 지원해 주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포기하고 굳이 돈을 쓰려고 하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누리과정 핵심인 인성, 생활 교육은 영어유치원이 더 잘 가르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인간의 당연한 욕망을 정부가 ‘잘못됐다’며 묻지마식 통제를 하려는 발상이 틀렸다. 수요가 있다면 교육과정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사교육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