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10억 달러씩 내라”… 韓 기업 머니머신 취급한 美상무장관

 “10억 달러씩 내라”… 韓 기업 머니머신 취급한 美상무장관

Posted February. 25, 2025 07:57   

Updated February. 25, 2025 07:57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미국을 방문 중인 국내 주요 기업 대표 사절단을 만나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이상을 미국에 투자해야 ‘패스트트랙’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했다. 투자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야 환경 평가와 안보 심사 등 주요 심사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하게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대미 투자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통상당국은 ‘10억 달러’가 투자 하한선이 아니라 “투자를 많이 해달라”는 독려 차원으로 해석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한국 기업이 1억 달러를 들여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는 등의 투자 성과를 강조하는 가운데 10억 달러를 언급한 것은 ‘그 정도론 부족하다’는 미국 측의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미국 측은 투자를 약속할 경우 1년 내 착공 등 구체적 실행이 필요하며,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도 했다. ‘2년 연속 대미 투자 1위’라는 사실을 강조해 통상 압력을 줄이고자 노력해온 한국으로선 고민이 많아지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달여간 미국은 모든 국제관계를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앞세운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부를 정도다. “친구(동맹)와 적들이 미국을 이용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미국 앞에서 ‘피로 맺어진 70년 동맹’ 같은 감정적인 호소는 더 이상 먹히기 어렵다.

민간 사절단은 한국이 지난 8년간 1600억 달러 이상을 미국 제조업에 투자했고, 80만 개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 사실을 부각했다. 조선, 에너지, 원자력,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등 양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도 제시했다. 좋은 전략이지만 이 정도론 미국의 마음을 흔들긴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양국에 실질적 도움이 되면서 미국이 관심을 가질만한 ‘빅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트럼프 2기의 관세 폭풍이 거세지면서 세계 각국은 정상이 직접 발 벗고 미국과 협상에 나서고 있다. 반면 리더십 공백에 빠진 한국은 무역금융 확대 등 기업 피해를 줄이는 수세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 대규모 투자에 상응하는 확실한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등 줄 것은 주되 받을 것은 받아내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비즈니스맨인 트럼프 대통령과 상대하려면 한국도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