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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평화

Posted March. 23, 2021 07:54   

Updated March. 23, 202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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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중국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부대가 국경을 넘어 버마(현재의 미얀마)와 태국 사이 샨족의 땅으로 숨어들었다. 추격해 오는 중국 공산군과 이들을 몰아내려는 토착민 샨족, 버마군, 태국군과 무력 생존투쟁을 벌인다. 이들 부대의 이야기는 홍콩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아주 복잡하고, 국제적으로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남긴다.

 국민당군은 현지에서 샨족을 훈련시켰는데 그중 쿤사라는 병사가 있었다. 나중에 쿤사는 국민당군과 대립하며 소위 골든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던 지역에서 마약을 재배했다. 월남전을 계기로 미군 병사에게 마약을 판매하던 그는 미국 시장을 장악하는 마약왕이 되고 버마에서 독립을 꿈꾸던 샨족 군벌과 결탁해 강력한 기반을 구축했다.

 국민당군을 지원했던 미국은 국내에 범람하는 마약으로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이 사태의 진정한 피해자는 버마일 수도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버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에 점령당했다. 종전과 함께 독립을 코앞에 둔 시점에 버마족 지도자였던 아웅산이 암살된다.

 아웅산 암살로 버마 정부의 군부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는데, 국민당군을 몰아내려는 전쟁으로 군부의 세력은 급속히 강해진다. 이것이 1962년 군부 쿠데타의 배경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네윈은 아웅산의 딸 수지를 감금하고 30년간 철혈통치를 했다. 네윈이 물러나고 수지가 집권하면서 미얀마에 민주주의와 평화가 찾아왔나 싶더니 다시 군부의 쿠데타와 피를 부르는 항쟁이 시작되었다.

 민주화 투쟁이 성공한다고 해도 난관은 첩첩이 쌓여 있다. 미얀마 인구의 60%는 버마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40여 개의 소수민족이다. 개방을 통한 경제개발 정책은 인도, 중국, 태국, 캄보디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미얀마에 하루빨리 평화와 번영이 찾아오기를 바라지만, 미얀마 국민의 노력, 화합과 함께 국제사회의 협력과 현명한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