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은 반드시 온다. 그 날을 대비해 통일세 ()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달라고 제안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로 이어지는 단계적 평화통일 구상은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하지만 통일세 신설은 너른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으면 저항이 클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 대통령의 제의는 당장 통일세를 신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독일이 1990년 통일 후 지난 20년간 쏟아 부은 통일비용이 2조 유로(약 3000조 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도 천문학적 통일비용에 대비할 필요는 있다. 경제력이나 인구비율 면에서 본다면 지금의 남북한은 통일 당시 동서독보다 훨씬 조건이 열악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통일을 맞았다간 세계 15위권 경제가 견디지 못하고 동반 추락할 수 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통일이고, 어차피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이라면 미리부터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통일세 신설은 국민과 기업에 상당한 부담을 안기는 일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새 세목을 신설하는 것은 기존 세금의 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조세 저항이 크다. 목적세는 그 부담을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통일세를 거론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옳은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보다는 정부가 통일에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재정 건전성을 대폭 강화해야 하고 남북협력기금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고 축적해야 한다.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거나 부가가치세 소득세 법인세의 세율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가치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 구현도 정부의 공정한 일처리나 솔선수범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일반 국민에겐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말끝마다 법치를 강조하면서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법을 어긴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대거 특별사면한다면 어느 누가 공정하다고 여기겠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도 자칫 재벌이나 대기업 때리기로 흘러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나 시장경제의 작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친서민도 좋지만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재차 강조한 정치 선진화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대결 정치와 해묵은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지역 발전과 행정의 효율화를 이루기 위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은 물론 필요하다.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개헌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헌은 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부터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모든 것은 제도의 문제 이전에 운영의 문제다. 정부와 여당이 정치와 행정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스스로 희생하는 모습부터 보여줘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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