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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의 갈증, 55번 두드려 풀었다

Posted September. 22, 200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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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이 흘러 21일 미국 샌디에이고의 토리파인스GC 남코스(파72)에서 끝난 삼성월드챔피언십. 최나연은 최종 합계 16언더파 272타를 기록해 미야자토 아이(일본)를 1타 차로 제치며 LPGA 첫 승의 감격을 맛봤다. 55번째 도전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승 상금은 25만 달러(약 3억 원).

롤러코스터 스코어

2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최나연은 2, 4번홀 버디에 이어 6번홀(파5)에서 이글을 낚아 7타 차까지 달아났다. 싱거운 승리가 예상됐지만 역시 장갑 벗을 때 까지 알 수 없는 게 골프였다. 9번홀부터 10, 11번홀까지 연이어 보기를 했다. 반면 최나연의 앞 조에 있던 미야자토는 슬금슬금 타수를 줄이더니 12번홀 버디로 1타 차까지 압박했다. 뒷덜미가 찌릿해진 최나연은 15번홀에서 어이없는 3퍼트로 공동 선두를 허용했고 16번홀(파3)에서 미야자토가 버디를 잡아 오히려 1타 차 2위로 밀려났다. 눈앞에 아른거리던 우승컵이 사라지는 듯했다.

극적인 피날레

미야자토는 1타 차 선두였던 18번홀(파5)에서 209야드를 남기고 5번 우드로 투 온을 시도했지만 공은 그린 앞 연못에 빠졌다. 벌타를 받고 네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린 뒤 5m 파 퍼트에 실패했다. 2라운드 때도 세컨드 샷을 물에 빠뜨렸던 그에게는 뼈아픈 보기였지만 최나연에게는 행운의 신호였다. 상대 실수로 공동 선두가 된 최나연은 18번홀에서 호쾌한 드라이버 티샷을 날려 핀까지 193야드를 남겼다. 18도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투 온을 노린 그는 공이 왼쪽으로 감긴 줄 알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행히 공은 그린 앞 프린지에 떨어졌다. 최나연은 12야드를 남기고 웨지 대신 퍼터를 빼들어 공을 굴렸으나 긴장한 탓에 생각보다 짧았다. 남은 거리는 홀까지 1.5m. 이날 쇼트 퍼트 난조에 애를 먹었던 그는 신중하게 버디 퍼트를 했다. 그린 위를 구르던 공은 마침내 홀 안으로 사라졌다.

새가슴 탈출

최나연은 주니어와 국내 프로 시절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했다. 대기선수 신분으로 지난해 미국 무대에 데뷔했지만 시즌 초반 꾸준히 상위권의 성적을 거둔 덕분에 신분이 바뀌어 그 후 전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지난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는 4개홀을 남기고 4타 차 선두였다 연장전에 끌려들어가 패했다. 신인왕 타이틀도 청야니(대만)에게 내줬다.

올 시즌에도 톱 10에만 9차례 들었을 뿐 정상과 인연이 멀었다. 3월 마스터카드클래식에서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맞았으나 5타를 잃고 우승을 날렸다. 올 시즌 평균 타수가 70.7타인 그의 4라운드 평균 타수는 71.7타로 심각한 뒷심 부족을 노출했다.

그런 그가 5월 코닝클래식을 끝으로 늘 동행하던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했다. 미국 진출 후 최나연은 대회 때마다 골프장 인근의 가정집을 1주일 동안 빌려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출전했다.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았고 어머니는 입이 짧은 딸이 좋아하는 고기와 찌개를 준비했다. 홀로서기에 나선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해결해야 했기에 몸은 고단했어도 한층 성숙해졌다. 그는 주위에서 어른스러워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최근 미야자토,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 등의 멘털트레이닝을 담당한 전문 심리 치료사의 조언을 들으며 정신력과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이날 그는 3홀 연속 보기, 미야자토의 추월 등으로 압박감이 심했으나 예전과는 달리 막판에 강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