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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추기경은 떠났지만 김수환 정신은 우리 속에 살아 있다

[사설] 추기경은 떠났지만 김수환 정신은 우리 속에 살아 있다

Posted February. 21, 2009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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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애도 속에 김수환 추기경이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성직자묘역에 안장됐다. 선종()에서 장례미사까지 가톨릭 국가에서도 보기 힘든 40여만 명의 조문객이 명동성당을 찾았다. 성()과 속()의 구분 없이 모처럼 한마음이 되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장례위원장 정진석 추기경의 강론대로, 김 추기경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에게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고 우리 시대의 큰어른이었다. 그분의 생애와 업적을 돌아보면 추기경을 우리 민족에게 보내준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한홍순 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의 고별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고인이 평생 온몸으로 보여준 김수환 정신을 우리가 실천하고 확산시켜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만드는 것은 남은 우리의 몫이다.

김수환 정신의 맨 앞에 자유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신념이 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이듬해 레흐 바웬사는 최초의 반체제 자유노조를 탄생시키고 1980년대 동유럽에 민주주의를 일깨웠다. 동유럽에 민주화의 불씨를 댕긴 요한 바오로 2세처럼 김 추기경의 존재는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굳건한 버팀목이었다. 1980년 1월 1일 인사차 찾아온 서슬 퍼런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서부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했던 고인이었다. 그는 어려운 시대에 용기와 신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설계하고 인도했다.

추기경의 아호 옹기는 종교와 세속을 아우른다. 신앙의 박해를 받는 조선의 천주교인들은 김 추기경의 부친처럼 산속에서 옹기를 만들어 팔며 신앙을 이어갔다. 옹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도 담는 질박한 용기다. 고인은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 병약자 수인() 등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더 나누고 더 섬기는 옹기의 사랑을 보여줄 때다.

종교는 물론 이념과 정파, 지역과 계층을 초월했던 추기경의 관용과 배려야말로 김수환 정신의 알맹이다. 평생을 노하거나 동요하는 일 없이 묵묵히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김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