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종 19년에 한 사노()가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쥐고 흔든 죄로 붙잡혀 갔다. 형조()가 조사를 마친 뒤 법률상 부대시참()에 해당한다고 아뢰자 임금은 그대로 시행하라고 명했다. 부대시참은 죄질이 무거운 사람을 판결 즉시 참형하는 걸 말한다. 같은 참수형이라도 춘분()에서 추분() 사이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는 피해서 때를 기다렸다가 행하는 대시참()도 있다. 죄질에 따라 죄인을 달리 대우한 것이다.
중종은 죄질이 나쁜 경우에도 인정()을 베풀려고 애쓴 임금이다. 한번은 박지매라는 강도의 처형 시기를 놓고 지금은 만물이 소생하는 때라 형을 집행하기에는 내 마음이 몹시 미안하다. 가을까지 기다리는 게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대신은 그는 잔인한 살인자라 경우가 다릅니다. 죄에는 경중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지체하지 말아야 마땅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중종은 마지못해 부대시참을 허락했다.
벌을 주려면 죄의 유무()를 먼저 가린 뒤 유죄로 판단될 경우 그 경중()과 성질, 즉 죄질을 따져야 한다. 이인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선출마설이 파다한 이회창 씨를 나보다 더 죄질이 나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1997년 대선 때 아들의 병역 문제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10% 안팎으로 급락했을 때 대안()으로 나섰던 자신과, 아직 요지부동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을 가정해 스페어로 나온다는 이회창 씨는 다르다는 논리다.
그의 주장은 10년 전 자신의 경선 불복 독자 출마도 유죄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경선에서 결정된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면 대안 출마에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생각은 애당초 억지다. 그는 김대중 씨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끝에 경선 불복자 대선 출마 금지 규정을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고,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철새의 길을 걸었다.
그런 이인제 씨한테서 죄질이 더 나쁘다는 말을 듣는 이회창 씨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