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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밖에 모르던 프랑스유학생 민간외교 첨병으로

봉주르밖에 모르던 프랑스유학생 민간외교 첨병으로

Posted December. 16, 20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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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어느 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알자스 주지사 사무실에 한 동양계 청년이 들이닥쳤다. 그는 다짜고짜 돈을 요구했다.

한국을 알리는 행사를 하려는데 60만 프랑(당시 약 1억 원)만 지원해 주십시오.

주지사는 느닷없는 요구에 처음엔 당황했다. 하지만 청년의 배짱을 높이 사 여기저기서 후원금을 모으고 사비까지 보태 예산을 마련해 줬다. 청년은 이 돈으로 스트라스부르에서 한국유물전시회, 한국 전통예술 공연, 한국 경제 간담회 같은 행사를 3주 동안 치러냈다. 알자스에서 대규모로 한국 관련 행사가 열린 건 처음이었다.

주인공은 스트라스부르 인근 뮐루즈에 있는 컨설팅 회사 한코퍼레이션의 장홍(47) 사장. 20년 전 봉주르밖에 모르면서 프랑스 유학을 감행할 만큼 모험심 강한 학생이 이제 어엿한 비즈니스맨이자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민간 외교의 첨병이 됐다.

장 사장은 한국의 기업을 알자스 지방에 유치하거나 한국에 투자하려는 프랑스 기업에 조언을 해 준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은 조만간 장 사장이 마련한 뮐루즈의 비즈니스 센터에 입주할 계획이다.

이 사업으로 그는 프랑스 언론과 수십 차례 인터뷰했다. 그는 프랑스 기업들도 자국 땅을 떠나는 마당에 한국의 기업을 데려오니 기특해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알자스 친선협회 회장이기도 한 장 사장은 이미 알자스 지방에선 유명 인사다. 주지사, 시장, 대학 총장 등 지역 유력 인사들과 두루 친분을 나누고 있다. 대부분은 장 사장을 통해 한국을 제대로 알게 됐다. 누군가는 그에게 가장 알자스적인 한국 사람, 가장 한국적인 알자스 사람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기도 했다.

장 사장은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으면서도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다.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였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프랑스에 와 뮐루즈대에서 고문서보관학을 전공하고 스트라스부르대에서 유럽 통합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이곳에 눌러앉았다.

그는 프랑스인과 친분을 쌓는 무기로 포도주를 선택했다. 포도주 얘기부터 시작하면 모든 이야기가 술술 잘 풀렸다. 그는 외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것을 들이밀기에 앞서 그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먼저 체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금동근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