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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문박물관

Posted August. 04, 2005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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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한성순보다. 1883년 10월 창간돼 1년 정도 발행되다 갑신정변이 일어나면서 폐간됐다. 한성순보가 없어지자 서울 장안에는 다시 신문을 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뒤를 이어 나온 한성주보는 1886년 1월 25일자 창간호에 이렇게 썼다. 전에는 신문이 없어도 불편한 줄 모르고 지냈으나 한성순보가 간행되다가 중단되니 겨우 열렸던 눈과 귀가 다시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한국 신문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신문박물관의 총관람객 수가 어제 20만 명을 돌파했다. 2000년 12월 국내 최초의 신문박물관으로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안에 자리 잡은 지 4년 8개월 만이다. 국민의 눈이 되고자 했던 신문이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진실을 가리고 비판을 막으려는 탄압과 통제가 이어졌지만 신문은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문박물관이 수집한 5000여 점과 현재 전시 중인 600여 점의 자료는 바로 그런 역사의 축소판이다.

종이신문의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넓게 보면 읽는 문화 전반의 위기다. 영상시대를 맞아 읽는 번거로움을 지닌 활자매체가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월터 크롱카이트 씨는 방송인임에도 신문을 읽어야 세상을 알고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의 교육 현장에서 논술시험이 중시되는 것은 활자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논술시험이 사교육에 좌우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나 읽기와 쓰기 능력은 하루아침에 키워지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활자매체를 가까이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신문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학생과 가족 단위가 많다. 하루 나들이를 통해 신문과 활자매체에 친근감을 느끼고 돌아간다면 적지 않은 소득이다. 많이 읽는 국민이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신문 읽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셈이다. 활자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신문박물관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걸 보면 아직 비관은 이르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