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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청년 이순신, 영웅만들기

Posted July. 14, 2005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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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개봉되는 천군을 보기 전 다음 두 가지 예상을 하고 있다면 생각을 단단히 고쳐먹어야 한다. 첫째, 이 영화는 웃긴다. 둘째, 박중훈은 웃긴다. 정답을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안 웃긴다. 박중훈도 안 웃긴다. 더 정확하게는, 이 영화나 주연배우들은 애당초 관객을 웃길 의도가 없었다.

웃길거야 상상은 금물

남북한이 비밀리에 공동 개발한 핵탄두 비격진천뢰가 미국에 양도될 상황에 처한다. 북한군 소좌 강만길(김승우)은 명령을 무시하고 비격진천뢰를 빼돌려 도망친다. 압록강에서 강만길 일행과 그를 쫓던 남한장교 박정우(황정민) 일행이 대치하는 순간 지구를 지나는 혜성의 이상 작용으로 두 무리는 조선시대(1572년)로 돌아간다. 그들은 무과시험을 포기하고 인삼 밀매로 연명하던 28세 청년 이순신(박중훈)과 맞닥뜨린다.

천군이 웃기지 않는 것은 무죄다. 이 영화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오락영화들과는 출발부터 다른 지점에 서기를 원했던 것 같다.

이순신은 단 한번도 희화화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오랑캐를 앞에 두고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게 말이 되겠오(이순신) 만용을 부리다가 이대로 죽기엔 당신은 너무나 위대한 사람입니다(박정우)와 같은 올바르고 진지한 대사의 톤을 잃지 않는다.

천군을 보면서 관객은 간헐적으로 폭소를 터뜨릴 터이지만, 이순신이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꼬이냐고 말할 때조차 정말 웃겨서가 아니라 저건 웃기려는 것이라고 관객이 지레짐작한 데서 오는 오해의 산물인 것이다.

총제작비 87억 원을 들인 이 영화는 관객 입장에선 유죄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미필적 고의다. 분명 웃길 생각이 없었지만, 이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는 관객이 웃긴 영화를 예상하고 극장을 찾으리라는 기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 공효진이라는 라인업에다가, 시간여행의 설정에다가, 남북한 군대의 이순신 장군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흥미진진한 선전 문구를 접한 관객이 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여진족과 혈투 등 주제 무거워

야만적인 여진족과 민초간의 혈투를 담은 천군의 라스트 신은 스케일이 장대하고 처참할 뿐 아니라, 신성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비장미가 의미 과잉으로 다가오는 건, 시간여행이라는 핵심 아이디어가 이순신 영웅 만들기라는 주제의 체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탓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순간, 과거로 간 일행이 부적응을 겪는 순간, 이순신이 하류인생을 접기로 결심하는 순간, 일행이 현재로 복귀하는 순간처럼 시간여행이라는 설정 자체로 거저먹을 수 있는 대목들이 영화에 이렇다할 방점을 찍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땅에 묻혀버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어쩌면 의미 있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가 더 만들기 어려운 건지 모른다. 민준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 15세 이상.



이승재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