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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한국역사 폴란드와 닮았다

Posted April. 03, 200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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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두 차례나 방한하는 등 한국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1984년 5월 3일,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무릎을 꿇어 한국 땅에 입을 맞추는 친구() 의식을 행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날 한국 가톨릭 200주년 기념식 및 김대건() 신부 등 순교자 103위에 대한 시성() 시복()을 위해 한국을 찾은 것. 교황의 해외 순방국가로는 21번째였다. 그는 도착 성명 첫머리에서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를 인용해 한국어로 벗이 있어 먼 곳을 찾아가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인사했고 마무리도 역시 한국어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방한 전 로마에 있던 장익(현 춘천교구장) 주교에게서 주 3회 한국어를 배웠다. 또 한우근() 전 서울대 교수의 한국통사 영역본을 읽고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의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황은 첫 방한 때 40여만 명이 모인 부산 강연에서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줄 것을 요구하는 등 당시 정치 상황에서 볼 때 민감한 발언을 했다. 또 그는 방한 마지막 행사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젊은이와의 대화 시간에 군사정권의 폭압성을 알리겠다며 일부 젊은이가 들고 온 최루탄 상자를 흔쾌히 받은 사실이 최근 알려지기도 했다.

교황은 그 뒤 1989년 10월 7일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집전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교황은 10월 8일 65만여 명이 운집한 서울 여의도광장 성체대회 미사에서 남북 화해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교황은 한국에 큰 사건이나 재해가 있을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고,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및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때는 위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교황은 북한 방문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0년 3월 로마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교황을 만나 방북을 권유하자 교황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교황청은 평양에 대주교를 파견하고 북한에 수십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교황청이 방북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북한의 가톨릭교회 인정 가톨릭 신부 입북 허용에 대해 북측이 소극적 태도를 보여 교황의 방북은 끝내 무산됐다.



서정보 윤종구 suhchoi@donga.com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