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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힘 확 뺐어요"

Posted July. 28, 2004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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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남더라고요.

권상우(28)가 말했다. 8월 6일 개봉되는 로맨스 영화 신부수업에서 그는 처음으로 육감적인 근육 혹은 수컷 본능을 까만 신부복(수단) 속에 감췄다. 무슨 충돌 같기도 하다. 몸짱 권상우가 소심하고 눈물 많은 예비 신부()로 등장한다는 것은.

마지막 서품식(사제가 되는 의식) 장면에서 NG가 많이 났어요. 하느님과 봉희(하지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눈물이 잘 안 나와서요. 나 권상우는 하느님과 여자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확실히 여자를 택할 텐데. 몰입이 안 됐던 거죠.(웃음)

23일 서울 종로1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화장실에서 불편한 것 빼고는 신부복이 너무 멋져 마음에 들었다면서 여자 때문에 시험에 든다는 점에선 예비 신부나 남자 연기자나 비슷한 처지라고 했다.

바느질에 능한 신학생 규식은 우연히 왈가닥 소녀 봉희와 난생 처음으로 입맞춤을 한 뒤 믿음이 흔들린다. 누구에게나 첫 키스의 기억은 남는 법. 하지만 권상우는 할 수 없이 여자와 헤어지게 되면 그땐 모조리 잊어버린다며 첫 키스란 기억하는 게 아니다라고 짧고 쿨하게 말했다.

데뷔 4년 만에 인기절정에 오른 그에겐 남부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속내를 뜨겁게 토해냈다.

저에게 발음이 안 좋다 발성이 안 좋다 얘기들 해요. 예전엔 그게 콤플렉스였어요. 하지만 제 혀가 진짜 짧은 것도 아니에요. 사실 (발음) 습관이 잘못되었을 뿐인데. 생활하는 데 불편은 전혀 없거든요. 제가 한석규씨처럼 완벽하게 말을 하게 된 다음에 작품을 해야 할까요? 성우() 같은 발음과 악센트에 신경 쓰며 연기한다면 제가 제 감정에 더 충실할 수 있을까요? 저를 작품으로만 평가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자부해요.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 역은 우리나라 어떤 배우가 해도 저만큼 하지 못했을 거라고. 나에겐 내가 갈 길이 있고 내 영화가 있어요.

권상우는 이 영화에서 너무 일방적이셔 같은 연약한 대사를 쏟아내고, 성모상 밑에 내 마음에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애정 고민을 수줍은 낙서로 남기는가 하면, 툭하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등 이미지 변신을 꿈꾼다. 그의 눈웃음을 웃음으로 치지 않는다면, 솔직히 권상우는 웃을 때보다 울 때가 더 섹시하다. 그는 이제까지 불량스럽고 기생오라비 같은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사랑스러운 남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데뷔 때는 혼자 먹고 잘 수 있는 원룸만 생겼으면 했어요. 원룸을 얻으니 이젠 걸어 다니는 게 힘들어졌죠. 스쿠터를 샀어요. 위험하단 생각에 다음엔 차가 사고 싶어졌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어머니 집 사드리고 하다보니 계속 위만 쳐다보게 됐죠. 대전에 있는 고향 친구들을 가끔 만나요. 다들 직장 생활하는데, 열심히 일해 한 달에 200만원이 채 안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그 친구들 보면 내가 깨어나는 거죠. 나는 도대체 뭘 하는 건가. 나한테 진정 중요한 것은 뭔가. 전 평생 부를 좇아 살고 싶진 않아요. 욕심을 버려야겠어요.

권상우는 치솟은 인기가 드리운 쓸쓸한 그림자를 감지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말 하면 아마 웃을 것이라며 요즘엔 혼자 시골로 차를 몰고 가서 하루 종일 올갱이(다슬기의 방언)를 잡다 올 때도 있다. 진짜 내가 약간 이상해졌다며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뭐냐고 묻자 그는 두 가지를 꼽았다. 편견과 담배였다.



이승재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