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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반도체, ‘필수공익사업’ 지정은 어떤가

[칼럼]반도체, ‘필수공익사업’ 지정은 어떤가

Posted June. 02, 2026 08:26   

Updated June. 02, 2026 08:26


2005년 여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가 파업에 나섰다. 휴가를 떠나려던 여행객들의 발이 묶였고 항공 물류 대란으로 피해 기업들도 속출했다. 정부는 결국 25일 만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파업을 강제 중단시켜야 했다. 그해 겨울 이번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운항을 거부했다. 정부는 나흘 만에 또다시 긴급조정권을 꺼내들었다. 1963년 도입된 긴급조정권은 지금껏 딱 네 번 발동됐는데, 그중 두 번이 그해 이뤄진 것이었다. 하늘길이 막혔을 때 국가경제가 어떤 혼란에 빠지는지 경험한 정부는 이듬해 법 개정에 나섰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에 명시된 필수공익사업 범위에 ‘항공운수사업’을 넣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항공사는 2008년부터 필수공익사업장으로 분류됐다. 노조 파업 시에도 대체근로를 허용해 국제선 80%, 국내선 70%인 최소 운항률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

20년 전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은 지난달 목전까지 갔던 삼성전자 노조 파업이 준 충격 때문이다.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는 노조원들이 성과급 5억∼6억 원을 요구하는데도 회사로서는 파업 위기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공장이 서면 피해가 10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정부도 긴장감을 드러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긴 마찬가지였다. 7만 명 노조원들의 결정에 올해 국가예산의 7분의 1이 날아갈 참이었다.

다행히 반도체 공장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노조는 반도체 사업장에서 파업이 얼마나 위력적인 카드인지를 새삼 확신하게 됐을 것이다. 크레인 위로 올라가거나 건조 중이던 선체 바닥에 들어가 셀프 감금을 하지 않아도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노조는 요구 사항이 생길 때마다 파업이란 만능열쇠를 꺼내들지 모른다. 당장 삼성 노조의 ‘완승’을 지켜본 SK하이닉스 노조가 “우리도 삼성만큼 수억 원을 저리 대출해 달라”고 요구할 예정이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게 반도체의 ‘필수공익사업’ 지정이다. 반도체처럼 국가경제에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산업이 한 이익집단에 의해 흔들린다는 건 불합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서다. 반도체는 올해 1∼5월 누적 기준으로 대한민국 수출의 37%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 시총의 55%가 넘는다. 반도체 파업이 전 국민의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경이다.

물론 헌법상 노동자의 기본권 중 하나를 법으로 제한하는 일인 만큼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쉽게 볼 문제는 아니다. 현재 노조법은 필수공익사업을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않은 사업’으로 정의한다. 이미 지정된 철도, 항공, 수도, 전기, 가스, 병원, 통신 등처럼 반도체도 그런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왜 반도체만?”이라는 형평성 논란을 잠재울 논리도 필요하다.

여기서 시계를 20년 전으로 다시 되돌려 보자. 정부가 항공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할 때도 “비행기 안 뜬다고 굶어 죽나”는 반발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법 개정을 밀어붙였던 것은 항공 마비가 불러온 국가적 피해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항공 파업이 경제 생태계의 특수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면, 반도체 파업은 나라 경제 전체를 한참 뒤로 물릴 수도 있다. 그리고 성장잠재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우리 경제에 그 뒷걸음질은 치명상이 될 수 있다. 반도체는 ‘경제 안보’의 일환으로 다뤄야 하는 산업이다. 그러니 공익 관점에서의 파업 안전장치도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