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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승소에 취한 정부 제2의 론스타에 준비됐나

론스타 승소에 취한 정부 제2의 론스타에 준비됐나

Posted December. 02, 2025 08:39   

Updated December. 02, 2025 08:39


한때 론스타 사건이 연말 정치권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말이 많았다. 정부는 2022년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판정에 따라 약 3200억 원을 배상할 뻔했다. 정부가 이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 신청에서 지난달 다행히도 승소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한 국민 혈세를 뱉어낼 상황이었다. 과실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는 정치권 공방으로 시끄러울 게 뻔했다. 2022년 판정 전 금융 당국에선 ‘정치권에선 국정조사, 감사원 조사, 검찰 수사 등 별별 수사 얘기가 나올 거다’란 말이 나왔다. 론스타 사안에 조금이라도 엮인 당국자들은 ‘나는 모른다’며 함구하기 바빴다.

정부가 그랬던 분위기를 뒤집고 우리가 승소하자 김민석 국무총리가 나서 “중대한 성과”라고 발표하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취소 신청 당시 자신이 법무부 장관이었음을 내세우니 참 어색하기만 하다.

한국 정부가 지난한 법적 다툼에서 이긴 건 분명 노고를 인정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22년간이나 끌어온 분쟁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든 제2의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뒤흔들 수 있다. 정부도 또 다른 ISDS에 승소할 준비가 됐는지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론스타가 ‘먹튀’ 했다는 지적은 여전히 뼈아프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4억 원에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2012년 1월 외환은행을 약 4조 원에 하나금융지주에 팔아넘겨 상당한 차익을 남기고 한국 시장을 떠났다. 물론 이후 이를 방지하는 여러 규제가 생겨났다. 연기금 등 전문기관 투자자들이 사모펀드(PEF) 투자자로 참여해 감시하는 체계가 마련됐다. 정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도 강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선 PEF가 취득한 지분을 더 긴 기간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하거나 PEF의 차입인수(LBO) 한도를 더 줄이도록 규정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을 개선하는 순기능도 있는 만큼 ‘약탈 자본’이란 프레임은 경계해야겠지만 안전한 장치를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22년 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심사할 때 론스타가 ‘산업자본’에 해당하는지를 엄정하게 살폈다면 애초 론스타와의 ‘잘못된 만남’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있다. 당시 은행법은 비금융 부문의 자산 규모가 2조 원 이상인 산업자본이 은행 주식을 10%(의결권 있는 주식은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 예식장 등을 운영하는 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국은 워낙 외환은행 부실이 심해질 상황이라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 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지만 론스타의 산업자본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론스타 사건의 상흔이 진하게 남은 이유는 사건 자체가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기는 과정에서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영향이 커 보인다. 당국이 불필요한 오해를 낳지 않게 결정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덜했을 것이다. 한국의 금융기업들도 지난 22년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론스타의 먹잇감이 된 외환은행의 수준은 면했더라도 아직까지 ‘대출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란’ 비판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