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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학자’ 제도, 20년 전 실패한 ‘국가석학’ 2탄 안 돼야

‘국가과학자’ 제도, 20년 전 실패한 ‘국가석학’ 2탄 안 돼야

Posted November. 10, 2025 08:39   

Updated November. 10, 2025 08:39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국가과학자’ 제도를 신설하기로 했다. 세계적 연구 업적을 가진 국내 연구자를 내년 말부터 5년간 20명씩 총 100명을 선발해 10년 동안 매년 1억 원씩 연구비를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들이 공항을 이용할 때 편의를 봐주는 등 VIP 대접을 하고 국가 과학기술 정책 설계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이공계 학생들과 과학자들에게 성장 경로와 비전을 제시할 롤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가과학자 제도는 중국 정부가 자국 석학들에게 부여하는 예우인 ‘원사(院士)’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원사로 선발되면 평생 차관급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정년 제한 없이 연구비를 받으며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 국가 주요 정책 자문, 후학 양성 등에서도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가의 인정과 지원, 사회적 존경 속에 ‘국보급 인재’로 대우받는다.

하지만 형식만 빌려온다고 해서 정책이 성공할 순 없다. 이미 20년 전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정부는 2005년 노벨상 받을 과학자를 지원하겠다며 ‘국가석학’ 제도를 도입했다. 4년간 매년 10명 안팎씩 총 38명을 선정해 연 1억∼2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했지만 2008년 교육·과학기술 부처 통합 과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국보급이라고 치켜세우더니 퇴직할 때가 되자 ‘뒷방 늙은이’ 취급을 했다. 탄소나노튜브(CNT) 권위자 이영희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이론물리학자 이기명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 등 국가석학들은 현재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건너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열악한 처우과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 불안정한 연구 환경 탓에 그나마 남은 인재들마저 해외로 떠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국내 석박사급 이공계 인력 2700여 명을 설문 조사해보니 43%가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2030세대의 해외 이직 의향은 70%에 이르렀다. 한국 인구 1만 명당 인공지능(AI) 인재 순유출입 수는 -0.3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과학기술 인재들을 지키려면 연봉 등 처우 개선도 중요하겠지만 돈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년이나 연구비 걱정없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7일 R&D 생태계 혁신 국민보고회에서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을 폄훼하거나 무시하는 체제는 망했다”고 했다. 과학자가 사회적 존경을 받고 청년 연구자가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해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