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이어 내년에도 한국 경제는 1%대 성장률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1.9%로 전망했고,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8%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모든 수입품에 부과하겠다고 한 10∼20%의 보편 관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하면 성장률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이후 한국 경제가 2%도 안 되는 성장률을 보였던 건 초대형 대외 악재가 발생했던 때를 제외하면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한국 경제도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만큼 정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은 모두 멈춰 섰다. 당장 정부가 통상적으로 매년 12월에 내놨던 내년 경제정책 방향은 언제 발표할지 미지수다. 경제정책 방향에는 한 해 동안 정부가 추진할 정책의 큰 틀과 주요 과제들이 담긴다. 부진한 내수를 살릴 방안들이 담길 예정이었지만 정부 내부에서도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말이 나온다.
이미 법정 처리 기한을 넘긴 내년 예산안도 관련 논의가 사라졌다. 연말까지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었던 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준예산 체제가 되면 정부의 재량지출 대부분이 묶이게 된다. 2년 전 예산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준예산 편성 가능성이 제기되자 추경호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위기를 초래할 단초”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자칫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 1% 저성장과 경제위기를 초래할 단초를 함께 맞이해야 할 수도 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역시 불확실성이 커졌다. 여야는 주식, 펀드 등에 투자해 번 돈이 1년에 5000만 원을 넘으면 수익의 20∼25%를 세금으로 내도록 한 금투세를 폐지하기로 사실상 합의했지만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1월 1일부터 법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가상자산 과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담긴 반도체 특별법은 여야 합의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지적이 나오고,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대왕고래’는 내년 시추 예산이 전액 삭감돼 차질이 불가피하다.
외신에선 이번 사태를 두고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가 옳았다는 걸 확인시켜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는 “이제 투자자들은 아시아에서 계엄령을 시행한 국가로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그리고 한국을 떠올릴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증시가 지정학적 리스크,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등으로 저평가되고 있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올 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윤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옳음을 입증한 건 아이러니다. 이제 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 중 하나에 정부가 포함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경제팀은 8일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탄핵 부결 후폭풍이 계속되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해외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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