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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금지령이라는 유령

Posted February. 05, 201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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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는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안양CC에서 골프를 쳤다. 10월 유신 이후 골프를 끊었던 YS는 드라이브를 휘두르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날 27홀 골프회동은 두 야당과 여당 민정당의 3당 합당으로 이어졌다. YS가 권좌에 오른 출발점이 골프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YS는 대통령이 된 뒤 재임 중 골프 안 친다고 선언하고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YS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공직자들이 조심스럽게 골프를 쳤다. 재임 중 자유롭게 골프를 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골프를 치지 않았다가 임기 후반에 풀었다. 아무래도 대통령이 골프를 치지 않으면 공직자들도 자제할 수밖에 없다.

2013년 3월 초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 위협 속에서도 주말 굿샷을 날린 일부 군 장성에게 강한 경고를 날린 바 있다. 공직사회는 이를 사실상 골프 금지령으로 여겼다. 석 달 뒤 국무회의에서 당시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총대를 메고 골프 해금을 건의했지만 박 대통령은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았다. 한 달쯤 뒤 박 대통령은 환담 도중에 한 수석비서관이 접대 골프가 아니라면 휴일엔 골프를 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묻자 바쁘셔서 그럴 시간이 있겠어요라고 쏘아붙였다. 이후 골프 금지령은 현 정부 공직사회의 불문율이 됐다.

박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에 앞서 장관들과 차를 마시다 골프 금지령을 내린 일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골프 금지령은 유령이었단 말인가. 자신이 명예 대회장을 맡은 2015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 얘기를 꺼내면서 골프 활성화 방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골프 해금을 확인했다. 공직사회는 이 소식을 반기면서도 여전히 눈치를 보는 기색이다. 골프장에도 캐디와 잔디를 관리하는 인부, 식당 종업원 등 서민 일자리가 많다. 골프를 활성화시키려면 박 대통령부터 골프채를 잡아보면 좋을 것이다.

최 영 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