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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맥주의 굴욕

Posted July. 17, 2014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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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와이저는 맥주 맛을 아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는 아니다. 카스나 하이트 같은 라거(Lager) 맥주로 맛이 엇비슷하다. 밀러나 쿠어스도 버드와이저와 비슷한 라거 맥주다. 수입 맥주라 한국에선 비싸게 받지만 미국에선 값이 싸고 펍(Pub) 같은 곳에서 흔히 마시는 대중 맥주다.

미국 할인점 코스트코나 샘스클럽에 가면 맥주 종류가 너무 많아 놀란다. 새뮤얼 애덤스나 시에라 네바다는 에일(Ale) 맥주로 맛이 깊고 진하다. 몇 해 전 시에라 네바다를 처음 마셨을 때 맥주 맛이 이렇게 은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은 라거 맥주의 배가량 됐지만 독특한 맛은 잊지 못할 정도다. 혼자서 홀짝홀짝 음미하면서 마시기에는 좋지만 폭탄주용으로는 부적합하다.

아일랜드 고급 흑맥주 기네스는 비싼 것이 흠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가격에 팔린다. 세계 각국의 맥주들이 들어와 경쟁하니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소비자를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토양과 수질 오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음식점에선 아사히 기린 산토리 등 일본 맥주가 고가()에도 잘 팔린다. 미국 대형 할인점에선 한국 맥주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진열해 놓아도 잘 팔리지 않을 것 같다. 오죽하면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까.

최근 베트남 출장길에 맛본 비아 하노이도 상큼했다. 중국의 칭다오 맥주처럼 맛이 독특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베트남 맥주가 이 정도라니 내심 놀랐다. 한국 맥주회사들이 독과점에 취해 연구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소주나 양주에 섞어먹는 폭탄주용으로 쓰고 있으니 맥주회사 탓할 일도 아닌 듯하다. 상반기 맥주 수입량이 5만3619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500mL짜리로 1억600만 병이다. 오비나 하이트의 심심한 맥주 맛에 길들여졌던 소비자의 반란이 시작된 것일까. 외국 맥주에 안방을 내주었으니 한국 맥주의 굴욕이다.

최 영 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