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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축구와 대통령

Posted July. 10, 20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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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2점 차는 어려워도 해볼 만하다. 3점 차가 되면 싸울 의욕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알제리에 전반 3-0까지 져봐서 느낌 안다. 브라질은 전반 24분 독일에 세 번째 골을 허용했을 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0, 5-0, 6-0, 7-0의 행진.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브라질이 한 골을 넣었으나 별 의미는 없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1950년 월드컵도 브라질에서 열렸다. 그때만 해도 세계가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스위스 대회 때부터 비로소 축구강국 대부분이 참가한 월드컵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그 대회에 사상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리고 다시 4년 뒤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선수 펠레가 등장해 브라질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이후 월드컵 3회 우승으로 쥘리메컵을 영구히 차지한 브라질의 축구신화가 쓰였다.

펠레 이후 호마리우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 제2의 펠레로 불린 선수는 많았다. 하지만 모두 그 별명에는 뭔가 미치지 못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진짜 제2의 펠레가 나타났다는 말이 무성했다. 네이마르 때문이다. 그런데 네이마르가 직전 콜롬비아전의 척추 부상으로 뛰지 못하게 됐다. 처음에는 천재를 시샘하는 신의 저주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천만다행이었다. 네이마르라고 무자비한 독일 전차군단을 막아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는데 모두 네이마르가 없어서 졌다고 생각한다.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월드컵 개막식에 모습을 보였을 때 관중은 야유를 보냈다. 전임 룰라 때 4%를 넘던 경제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브라질이 선전하면서 비난은 잦아들었다. 올 10월 재선을 위해 뛸 호세프 대통령에게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사상 최악의 참패로 정국마저 혼미에 빠져들었다. 상파울루에서는 시위대가 버스를 불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날 조짐마저 보인다는 소식이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