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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분과 140분

Posted April. 24, 2014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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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46분 31초. 아메리칸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1호)에 시속 720km 속도로 부딪쳤다. 9499층에 걸쳐 건물을 뚫고 들어간 항공기 동체는 산산조각이 났고 제트 연료에서 점화된 화염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이것이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911테러 악몽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102분 뒤인 오전 10시 28분 북쪽 타워가 무너져 내렸다.

첫 충돌이 있었던 순간, 40m 떨어진 남쪽 타워(2호)에 있던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들도 옆 건물의 폭발음과 충격파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일부는 TV를 켜고 뉴스를 봤다. 사고가 북쪽 타워에 한정된 것이 확실하다는 보도를 접한 이들은 대피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중 상당수가 전화기와 모니터 앞에서 신속히 움직여 돈을 버는 주식 중개인이었다. 심지어 1층 로비로 대피했던 사람들조차 여기는 괜찮습니다. 사무실로 돌아가세요. 이 건물은 안전합니다라고 한 경비원의 말에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경찰서로도 대피 여부를 묻는 전화가 폭주했지만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경찰들은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 대답해줄 수 없었다. 망설이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따랐다. 오전 8시 55분 세계무역센터 화재안전 담당 부책임자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2호 타워는 대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대피하고 있는 분들은 다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세요. 반복합니다. 2호 타워는 안전합니다. 4분 뒤 다시 남쪽 타워에서도 각 층의 상황에 따라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이미 사무실로 돌아온 사람들 사이에서 긴박감은 사라진 뒤였다. 그 사이 16분 28초를 낭비했다. 오전 9시 2분 59초. 유나이티드 항공기가 시속 872km로 남쪽 타워에 돌진해 7785층의 9층에 걸쳐 대각선으로 건물을 뚫고 들어왔다. 그로부터 57분 뒤인 9시 59분 남쪽 타워가 북쪽 타워보다 먼저 붕괴됐다.

뉴욕 시는 이 사건으로 숨진 사람이 2749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147명은 항공기 두 대에 탑승했던 승무원과 승객들이고, 412명은 구조대원이었다. 특히 북쪽 타워가 붕괴될 때 200여 명의 소방관이 건물 안에 있었다. 남쪽 타워가 무너진 뒤 29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북쪽 타워의 소방대원들은 대피하지 않고 구조작업을 계속하다 목숨을 잃었다.

항공기가 직접 충돌한 층에 있던 600여 명은 대부분 즉사했다. 나머지 1500여 명은 항공기가 충돌했을 때 무사했으나 건물에 갇혀 있다가 목숨을 잃었다. 말을 바꿔 보자. 북쪽 타워에서 102분, 남쪽 타워에서 57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제대로 썼다면 1500여 명 중 상당수가 생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일주일을 지켜보며 다시 집어든 책이 뉴욕타임스 기자인 짐 드와이어와 케빈 플린이 쓴 102분이다. 두 기자는 911테러 생존자와 목격자들을 인터뷰하고, 무전 교신, 전화 메시지, 육성 증언, e메일 등 모든 자료를 모아 그날 아침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퍼즐처럼 재구성했다. 그리고 분노한다. 이 사건의 원흉은 테러범들이지만, 어쩌면 건물 자체의 결함과 정부 기관의 반목과 분열이 더 큰 피해를 불러왔는지도 모른다고. 세월호 침몰의 140분도 그렇게 기록돼야 한다. 기록하고 기억하고 반성하는 것만이 살아남아서 미안할 뿐인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