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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슬퍼하는 한일조약 두 주인공

Posted March. 13, 201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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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기본조약이 맺어져 국교가 열린 것은 1965년의 일이다. 14년에 걸친 어려운 협상을 타결한 주인공은 한국의 이동원 외무부 장관과 일본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이었다. 이 두 사람이 하늘에서 맞닥뜨려 대화를 나눴다면 어땠을까.

이: 이야, 시나 장관 아닙니까. 반갑습니다.

시나: 이런, 이 장관. 내 아들 같은 나이인데 벌써 여기에 있으리라고는.

이: 아닙니다. 그 시절은 30대로 아직 젊었지만 7년쯤 전부터 여기에.

시나: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도 아직 40대. 여러분은 젊고 활기가 있었죠.

이: 하지만 시나 씨는 노련한 거물이었습니다. 굴욕 외교 반대 시위가 달아오르던 서울에 와 김포공항에서 성명을 낭독했지요.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울 뿐으로 깊이 반성합니다라고. 그것은 역사적이었습니다.

시나: 요즘이라면 대단한 표현이 아니지만, 어쨌든 첫 사과라 긴장했어요.

이: 일본 국내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죄는 진짜 어른이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강행했지요.

시나: 하지만 호텔로 향하는 도로가에서는 시위대가 시나 돌아가라 굴욕 외교 반대라고 외쳤고 차에는 계란이 날아왔죠.

이: 그걸 꾹 참아냈지요. 대국을 보는 눈과 어느 정도 각오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시나: 그렇게 치켜세우지 마세요. 당신도 필시 힘들었겠지요.

이: 하지만 협상을 타결하라고 대통령이 단호한 결의를 보이셨으니.

시나: 대통령은 기백이 있었지요. 그래도 몇 년 전에 일본에 와 이케다 하야토() 총리 등과 만났을 때는 매우 겸손하게 행동했습니다.

이: 아주 정중하게 선배님, 도와주십시오라고 했지요. 국내에서는 굴욕 외교라고 비난받았지만 가난하고 황폐한 한국의 미래를 생각한 끝에 보인 겸손이었습니다.

시나: 정중하지만 기골이 있는 견실한 상대라는 인상을 줬지요. 비슷한 연배였던 일본 정치가들도 그 만남 이후 꼭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이: 외교는 인간끼리 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 치더라도 시나 씨는 인간미가 넘쳤습니다. 서울에서 협상이 난항하면 낮부터 함께 술이라도 마시자며 코냑을 꺼내 깜짝 놀랐습니다.

시나: 하하하. 어쨌든 어려운 문제투성이였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이: 1910년 한일강제병합은 당초부터 무효라든가, 한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우리의 주장을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죠. 독도 건도 난제였습니다.

시나: 3박 4일 일정이었지만 협상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 뿐. 그래도 끝까지 지혜를 모아 마침내 합의한 것은 일본으로 가는 날 새벽이었죠.

이: 시나 씨는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허가도 얻지 못한 채 대단한 결단을 했습니다.

시나: 그 시간에는 허가를 얻기가 어렵죠. 그렇지만 톱의 눈치만 보고 있으면 큰일은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총대를 메지 않으면.

이: 덕분에 국교가 맺어져 경제 협력으로 한강의 기적도 실현됐습니다. 최근에는 한류 붐도 일었는데 여러 문제가 분출해 한일 관계는 참담한 상황이 됐습니다.

시나: 그 조약은 어려운 타협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모순도 있고 불만인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50년이나 지나면 상황이 달라져 파열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잘 보완해 나가는 것이 정치외교의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이: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자기주장만 가득합니다. 유엔에서 한일이 다투는건 시곗바늘이 언제쯤으로 돌아간 것인지.

시나: 세계의 웃음을 살 일이지요. 내 친한 선배였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한일 관계에 심혈을 기울인 분입니다. 이 참상을 초래한 손자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이: 박 대통령도 완고한 따님을 어떻게 보고 계실지.

시나: 두 분을 오랫동안 못 만났는데 꼭 술 한잔하고 싶네요.

이: 천국도 붐비고 있습니다만 어떻게든 찾아봅시다.

이상 이동원 저 한일조약체결비화 등을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