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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광장과 데모광장

Posted August. 16, 20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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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중심의 붉은광장은 이 나라 역사와 권력의 상징이다. 크렘린 궁과 역사박물관, 바실리 성당, 백화점이 둘러싸고 있고 중앙엔 레닌의 미라를 전시하는 무덤도 있다. 록 음악 마니아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엔 광장에서 록 페스티벌도 많이 열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어서 러시아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문화재감독청은 특정 정치사회단체의 집회로 문화유산을 파괴하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러시아만 그런 게 아니다.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30여만 명 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고 연설한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몰 광장도 허가제다. 집회나 행사계획서를 내면 담당 직원들이 엄격히 심사해 허가를 결정한다. 기준은 광장의 보호와 질서 유지다. 시설물 훼손이나 폭력행위, 계획서와 다른 행사내용이 나중에라도 드러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음번 이용은 불가능해진다. 광장은 이용신청자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을 위한 공공장소이기 때문이다.

서울광장은 거꾸로 간다. 지금까지는 허가제였지만 신고제로 바뀔 모양이다. 시민들의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을 목적으로 한 행사만 가능했지만 앞으론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주말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이런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말은 그럴듯해도 신고제로 하면 데모광장이 될 게 뻔하다. 개정안 제안 이유에 명시했듯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시위 자유의 본질을 서울광장에서 실현하겠다는 게 진의라고 봐야 한다. 데모꾼들의 광장이 되면 2008년의 불법 쇠고기시위가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서울시가 재의를 요구하겠다지만 민주당 시의원이 전체의 75%나 돼 최종 통과는 불가피할 것 같다. 그러나 개정안에 서명한 시민은 8만5072명이고 전체 서울시민은 2009년 현재 1046만4051명이다. 아무리 시민의 광장이라고 해도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유재산은 없다. 서울광장은 이용신고자뿐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 간신히 제자리를 찾은 서울광장까지 시위 전문세력에 뺏긴다면 992만여 명의 서울시민들은 너무 억울하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