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외교관에게 여러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특권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외교관 신체에 대한 불가침권()이다. 주재국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외교사절을 체포구금할 수 없다. 빈 협약에는 외교관의 신체와 자유, 존엄성이 침해됐을 때는 가해자를 중벌에 처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국제사회가 외교관을 각별히 보호하는 것은 국가간 관계에서 그만큼 실질적, 상징적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달 말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가 그제 서울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봉변을 당했다. 자신을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라고 밝힌 김기종 씨는 폭언과 함께 시게이에 대사에게 주먹만한 크기의 돌덩어리를 던졌다. 시게이에 대사는 몸을 피했지만 통역을 맡은 일본 여성 외교관이 돌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 김 씨는 그동안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대사관에 세 차례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재야() 문화운동권에 몸담은 김 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독도 지킴이 활동을 벌여왔다고 한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거나 과거사를 왜곡하는 것은 우리로서 용납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에 신체적 위해()를 가하려 한 것은 국제법을 정면으로 무시한 황당하고 잘못된 행동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개인의 이런 돌출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처지를 바꿔 다른 나라에서 우리 외교관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그 나라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들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 씨는 시게이에 대사를 공격한 뒤 당신들, 한국인이라면 어서 저 놈을 죽이자고 방청객들에게 외쳤다. 경찰에 연행된 뒤에는 안중근처럼 죽여 버리고 역사에 남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단순한 민족주의적 감정의 발로라고 보기에는 너무 나갔다. 한일간 역사의 아픈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한국과 일본은 정식으로 국교를 맺고 외교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사이다. 시대상황이 완전히 다른 구한말과 비교해 안중근 의사를 운운한 것은 안 의사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