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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북 긴장시키는 기뢰

Posted March. 31, 201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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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끝난 뒤 57년간 남북한의 정전() 체제가 유지된 데는 휴전선 155마일 일대에 깔려 있는 지뢰도 한몫 했다. 휴전선에는 인명()을 살상하는 대인()지뢰와 60t이 넘는 탱크를 파괴하는 대전차() 지뢰가 즐비하게 깔려 있다. 북이 625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었던 힘은 탱크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탱크도 대전차 지뢰 앞에서는 전진할 수 없다.

바다에 깔아놓는 지뢰를 기뢰라고 한다. 기뢰에는 함정과의 접촉으로 폭발하는 접촉계류기뢰와 함정의 소음 등을 감지해 자동 공격하는 감응기뢰가 있다. 접촉계류기뢰는 적 함정의 예상되는 수로에 닻을 달아 설치한다. 감응기뢰는 해저에 붙어 있다가 적 함정이 지나가면 이를 감지해 떠오르면서 충돌하기 때문에 접촉계류기뢰에 비해 탐지하기 어렵다. 함정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떠오르는 성문()감응기뢰와 음향감응기뢰, 자장()을 감지해 떠오르는 자기감응기뢰가 있다.

상륙작전을 위해서는 먼저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작전이 필수이다. 625 당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인천 앞바다에서 기뢰 한 개를 발견해 기관총으로 폭파했다. 그리고 이틀 만인 1950년 9월 15일 한미 해병대를 상륙시켜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어 그해 10월 20일을 원산상륙작전 D데이로 정하고 사전 폭격에 들어갔다. 이상 징후를 느낀 김일성의 긴급 요청으로 옛 소련이 동해에 수많은 기뢰를 부설했다. 이를 모른 채 접근한 미군 함정 3척이 대파되자 D데이를 6일간 미뤄야 했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 중 하나로 기뢰가 거론되고 있다. 남북 어느 쪽의 기뢰인지도 판가름해야 한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은 625 때 기뢰 4000여 기를 소련에서 들여와 3000여 기를 동해와 서해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그동안 많은 기뢰를 제거했지만 100% 수거는 안 됐을 것이라며 북의 기뢰에 의한 폭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우리 군은 해당 해역에 기뢰를 부설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분리된 함수와 함미를 물속에서 들어올려 정밀조사를 하기 전에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이 정 훈 논설위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