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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윤진희 장한 모습 언니, 하늘에서 보셨나요

장미란-윤진희 장한 모습 언니, 하늘에서 보셨나요

Posted August. 18, 2008 06:46   

장미란(25고양시청)이 16일 역도 여자 75kg 이상급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는 동안 선수 대기실에는 종이백이 놓여 있었다. 여자 대표팀 오승우 감독이 가져온 것이었다. 백 안에는 고이 접은 한지가 있었다.

오 감독은 4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김동희 코치의 유골함을 쌌던 종이라고 했다.

장미란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딸 때 대표팀 코치였던 김 코치는 여자 역도 선수들에게 대모로 통했다. 운동하다 지친 선수들에게는 자상한 언니가 돼줬고 좀처럼 기량이 늘지 않는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힘든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체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는 등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코치였다.

암 진단을 받고 원자력병원 병상에 누워있던 김 코치는 선수들의 병문안을 말렸다. 그 시간에 더 열심히 훈련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라는 게 이유였다. 그래도 선수들은 시간을 쪼개 병문안을 왔다. 김 코치는 4월 1일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는 최소한 3개월은 더 살 거라고 했는데. 선수들 훈련 더하라고 일찍 눈을 감은 겁니다.

한지를 꺼내 보이는 오 감독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김 코치가 후배들을 위해 일찍 생명을 포기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10일 여자 53kg급에서 은메달을 딴 윤진희(22한국체대)는 경기를 마치고 김 코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란 윤진희에게 김 코치는 엄마 같은 분이었다. 2000년 치악중 2학년 때 역도를 시작한 윤진희는 꿈나무 선수로 선발돼 김 코치를 처음 만났다.

부산 출신으로 남성여중고와 한국체대를 거쳐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김 코치는 지도자가 된 뒤 탄탄한 이론과 특유의 섬세함으로 여자 꿈나무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미혼인 김 코치는 월급 대부분을 선수들에게 쏟아 부었다. 야무진 꼬마라고 부르던 윤진희가 살이 찌지 않자 비싼 보약을 사 먹인 것도 그였다.

오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가면 선수들과 함께 제주 용두암이나 고인이 생전에 자주 가던 부산의 한 사찰을 찾아 한지를 태울 작정이다. 오 감독은 김 코치가 바다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생전에 올림픽에 출전하는 네 선수의 성격에 따라 맞춤형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파일에는 경기 전날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고인이 된 김 코치는 베이징에 오지 못했다. 하지만 한 장의 종이가 되어 딸이고 동생이었던 윤진희와 장미란의 경기를 지켜봤다.

장미란은 이번 대회에서 한 번의 시도도 실패하지 않고 거뜬하게 역기를 들어 올렸다.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 바벨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이승건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