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배우로서 여유가 있어요. 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것, 배우로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여유가 있고,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천천히 더 잘하고 많이 보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31일 개봉)가 처음 공개된 21일, 전지현(사진)은 예상외로 느긋해 보였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연출하고 남자 배우 중 현재 최고 주가인 황정민이 출연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그에게 쏠려 있는 이 상황에서도 말이다.
최고의 스타지만 언제나 엽기적인 그녀에서의 이미지 또는 CF 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만든 홍콩 일본 프랑스 합작 영화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촬영을 마치고 세계 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갖춘 그는 이 영화가 먼저 개봉되면서 2년 만에 국내 관객의 평가를 받게 됐다. 그래서인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홍보 전략 또한 이번에는 배우로서의 전지현을 보여주겠다에 집중됐다. 전지현이 앞머리를 잘랐다느니, 다큐멘터리 PD를 연기하기 위해 화장기 없는 얼굴로 분투했고 건강 제일주의자인 그가 금연초와 저타르 담배로 골초 연기를 하느라 고생했다는 등의 뉴스가 연일 화젯거리가 됐다.
처음에 정민이 오빠만 믿고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이번 역할은 지금까지 했던 것 중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기존에 영화를 하며 연기를 접했을 때 간단한 장면이라 생각했던 장면들이 오히려 이번 송수정 PD 역할을 하면서는 아주 어려웠어요. 간단히 웃기만 하면 되는 장면이었는데 그런 것도 굉장히 힘들게 연기했어요.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확실히 예전과는 달랐다. CF 스타 전지현이 아닌, 생활인 송수정의 모습이 보였다.
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도 운명인 것처럼 배우와 영화가 만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황정민 씨와 정윤철 감독님과 영화를 하게 된 데는 운도 있었겠지만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싶어요. 오랜만에 한국 영화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부담도 됐었지만, 지금 덤덤하다는 것은 영화에 대한 기대가 워낙 크고 굉장히 자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 영화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슈퍼맨뿐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모두가 슈퍼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지현의 생각도 같다.
며칠 전에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친구가 항상 같은 자리에서 껌을 팔던 할머니에게 돈을 주는 것을 깜박했다며 지갑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간 적이 있었어요. 이 영화를 찍어서인지 몰라도, 내 친구 같은 사람이 슈퍼맨이란 생각을 했죠.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일단 시작하고 싶어요. 슈퍼맨이란 사람이 누구도 못하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슈퍼맨의 정의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해요.
채지영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