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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만 50번째

Posted April. 13, 200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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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동물을 돌보는 바람둥이 수의사 헨리(아담 샌들러)는 식당에서 루시(드류 배리모어)와 마주친다. 첫눈에 반한 헨리는 루시로부터 첫 데이트 약속을 받아낸다. 하지만 다음날 헨리를 만난 루시는 그를 치한() 취급한다. 루시는 1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하루만 지나면 전날의 기억이 지워지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헨리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루시에게 늘 처음인 것처럼 접근해 사랑의 포로로 만든다.

총알 탄 사나이3 성질 죽이기의 피터 시걸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웃기는 상황이 아니라 상황이 웃기는 쪽을 택한다. 가족은 매일 똑같은 날짜와 요일로 인식하는 루시를 위해 수도 없이 영화 식스 센스의 막판 반전을 보면서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또 헨리의 경우 오늘은 길을 가로막고 도로공사를 벌이고, 내일은 자동차 고장을 내고, 또 다음날은 납치된 것처럼 가장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프러포즈를 계속한다.

첫 키스에서 단기기억상실증이란 설정은 이렇듯 재미와 감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단 하루도 나태함을 용납하지 않고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데이트를 통해 이 영화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파고든다. 바람둥이 헨리에게 루시는 휙 떠나버려도 기억하지 못하는 최적의 데이트 상대였으나 나중에는 그가 날마다 지치지 않는 사랑을 바치는 사랑의 블랙홀로 변한다.

헨리의 희생을 보다 못한 루시는 헨리를 떠나보내려 한다. 그래서 헨리에 대한 짜릿한 기억(예를 들어 목에 키스하면 신음한다와 같은)을 적어놓은 일기장을 찢어 버린다. 결국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단기기억상실증 환자가 벌이는 기억조작에 있다.

헨리 역을 맡은 아담 샌들러는 벤 스틸러와 함께 최근 할리우드 코미디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그는 벤 스틸러와 아주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는 스크린 밖으로 폭발하듯 뛰쳐나오기보다 주변 인물과 하와이의 사랑스런 풍경으로 녹아들어가는 지혜로운 연기를 택했다. 그는 하루만 지나면 진짜로 까맣게 잊어버릴 것만 같은 표정을 가진 드류 배리모어와 웨딩 싱어 이후 6년 만에 재회했다.

지저분한 헨리의 동료 울라(롭 슈나이더), 근육남 대회에서 자신이 낙방한 사실을 모르는 루시를 위해 스테로이드를 먹고 매일 근육을 뽐내야 하는 오빠 더그(숀 어스틴 반지의 제왕의 샘 역)는 화장실 유머로 웃음을 촉발하지만 동료애와 가족애의 온실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1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