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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증오-혐오가 부른 정치테러… 적대시 문화 바로잡아야” ’

“극단적 증오-혐오가 부른 정치테러… 적대시 문화 바로잡아야” ’

Posted January. 03, 2024 08:10   

Updated January. 03, 20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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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향한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극단적 정치가 부른 ‘정치 테러’다.”

2일 발생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 양극화에 따른 정치 혐오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이같이 진단했다. 폭력을 쓰지 않고는 자신의 의견을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이란 분노와 불신이 결국 범죄 행위로 이어졌다는 것.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폭력을 방치하면 2021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및 2022년 7월 일본 아베 신조 총리 피살 사건 등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더 극단적인 공격 형태로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야 정치인들도 “정치권도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를 적대시하는 문화를 바로잡고 특정 집단을 향한 공격적 발언도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

민주당은 이날 이 대표가 괴한으로부터 피습당한 것을 ‘테러’로 규정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권칠승 수석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입장문을 내고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규탄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그동안 누적된 혐오 정치와 극단적 팬덤정치 문화가 폭력적 행위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거대 양당 간, 또는 같은 당 내에서도 서로 생각이 다르면 적대시하고,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 속에 폭력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피습 등 정치테러가 이어지는 건 폭력을 쓰지 않고는 내 의견을 제대로 표출하고 정치권에 전달해 수용시킬 수 없을 거란 불신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상대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게 당연한 일종의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 민주주의) 상황이라는 것.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상대방을 악마화시키는 정치 구조가 반복되면서, 상대방을 협치나 공생의 대상이 아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진 개인의 일탈 수준이지만 이를 방치하면 특정 단체의 집단행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실상 한국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 직전까지 간 것”이라며 “지지층이 내부에서 싸우다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그걸 집단행동으로 분출하면 미국 같은 일이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 정치인들 “적대적 발언 자제해야”

극단적 정치 폭력을 막기 위해선 결국 정치권 스스로 자성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야 모두 여론에 승복하고 서로를 향한 적대적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 양 교수는 “정치권이 서로를 겨냥해 ‘청산’ ‘척결’ 등의 표현을 쓰며 적대적이고 혐오적인 정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 같은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극단적 팬덤 정치를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요즘 정치는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결코 같이 갈 수 없는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짓는다”며 “심지어 같은 당내에서도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상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배격 대상으로만 삼는다”고 했다. 한 야권 관계자는 “범인의 정치적 지지 성향을 떠나서 특정 정치인 개인이 공격의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과도한 팬덤 정치 문화의 여파라고 본다”고 했다.

정치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통화에서 “우리 정치가 너무 극한적인 대립으로 가다 보니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감정적 대립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국민의힘 황우여 전 대표도 “정치인끼리 공적인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뒤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존중해야 한다”며 “원칙적으로 정치인은 유머나 해학, 은유 등을 활용해 표현을 완화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연설과 대화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도 통화에서 “극단적 정치 혐오 현상을 만든 정치권 전체가 자성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