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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앞두고 돌아온 에쿠우스

Posted January. 12, 200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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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대학로의 연극 연습실을 찾았을 때 배우 조재현(39)은 마침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연습실 한쪽 책상에서 후루룩 짬뽕을 먹던 그는 기자를 보고 같이 좀 들자고 권했다. TV나 스크린에서 보던 강렬한 카리스마 대신 옆집 아저씨처럼 수수한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하지만 잠시 후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마주 앉자마자 그의 눈빛에선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아저씨 배우 조재현은 이내 에쿠우스의 17세 청년 알런으로 바뀌어 있었다.

17세 청년 배역 위해 체력훈련

조재현은 29일 막이 오르는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에서 주인공 알런 역으로 출연한다. 1990년말부터 91년까지 8개월간 이어진 공연에서도 그는 알런이었다. 스물다섯 살, 넘치는 힘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그는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청년 알런으로 무대에 선다.

열정으로 따지면 14년 전이 오히려 더 중년에 가까웠어요. 그 때는 집에 두 살짜리 아들(수훈)이 있었거든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연습하는 동안에도 자꾸 시계를 보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지금은 젊은 시절의 감수성과 의욕이 다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세월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몸인데. 체력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는 요즘 서울 평창동 집에서 혜화동 연습실까지 달리기로 오간다. 매일 3040분 뛰면서 체력을 기르고 있는 것. 매일 오전 11시면 연습실에 나와 밤 10시까지 연습에 몰두한다.

느슨해지지 않으려 무대 섰죠

서른아홉의 나이에 열일곱 청년의 역할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의 모험. 1990년 그는 단지 가능성 있는 젊은 배우였지만, 지금은 TV와 스크린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스타가 됐다. 그의 말대로 이번 공연은 잘 해야 본전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를 이런 모험으로 이끌었을까.

연극은 참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영화나 TV는 잘 안되면 다시 찍으면 돼요. 하지만 연극은 막이 오르기 전에 이미 최선의 상태를 만들어 놓고 시작합니다. 무대는 거짓말을 못해요. 배우가 연기를 하다보면 그저 쉽게, 편하게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요즘이 그런 때입니다. 그런데 저는 긴장이 풀어지는 걸 참을 수 없어요. 요즘은 연습하면서도 긴장되고 떨립니다. 그런데 그 떨림이 참 즐거워요.

에쿠우스 첫무대때 패기 살릴것

그에게 알런은 꼭 한번 다시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었다. 무대의 충만함을 가르쳐준 역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기회를 엿본 끝에 이제야 알런으로 돌아왔다.

마흔이 다 되어 청년 알런을 맡는 것이 어쩌면 팔십 노인의 역할을 하는 것보다 더 진실할 수 있어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그 인물을 끄집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연기에는 자신 있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줄지가 문제죠.

별 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지만 그가 느끼는 부담감은 만만치 않아보였다. 그는 대사를 잊어버리고 허둥대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배우를 연극배우, 탤런트, 영화배우로 구분 짓는 것이 싫어요. 저는 그저 연기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연극은 다른 장르와 틀린 점이 있어요. 바로 관객과의 호흡이죠.

그런 만큼 새로운 알런을 만나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주성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