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읽기의 외주화’ 가속 문학도 줄거리 요약으로 접하면 타인의 삶 공감하기 힘들어져 읽고 사유하는 인간 능력 지켜야 ◇읽지 않는 사람들/나오미 배런 지음·전병근 옮김/412쪽·2만2000원·웅진지식하우스
기업 채용도 다르지 않다. 2024년 기업 리더 대상 설문조사에선 절반가량이 채용에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상당수는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지원자를 탈락시키도록 맡기고 있었다. AI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또 다른 AI가 읽고 평가하는 시대다.
미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인간이 가장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인 ‘읽기’를 AI에 “외주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요즘 AI 시대의 읽기를 다룬 책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인간의 손을 떠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들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삼 서늘하다.
광고 로드중
문학 읽기의 힘을 보여주는 연구도 흥미롭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활용한 연구에선 주인공 해리에게 자신을 동일시한 독자일수록 이민자와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편견이 낮아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만약 AI가 정리한 ‘해리=영웅, 볼드모트=악당’ 수준의 요약만 읽었다면 이런 공감이 가능했을까. 읽기는 줄거리를 이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통과해 보는 경험이란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뭣보다 인상적인 건 폴란드 화가 유제프 찹스키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그는 굶주림과 강제노동에도 동료들의 정신을 지탱하기 위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훗날 이 강연은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란 얇은 책으로 남았다. 영어판 기준 56쪽에 불과하지만, 이 책은 결코 프루스트 작품의 줄거리 요약이 아니다. 찹스키는 자신의 사유와 해석을 덧입혀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 AI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56쪽 분량으로 요약해 달라고 하면 아마 몇 초 만에 해낼 것이다. 그러나 AI는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를 쓸 수는 없다. 찹스키가 그 책을 쓴 이유는 정보를 압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이 버티도록 도우려는 의도였다. 읽고, 생각하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이 여전히 사고하고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증거였던 셈이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건 단순히 “책을 읽자”는 권유가 아니다. 읽기를 AI에 넘긴다는 건 그저 한 단계를 생략하는 게 아니다. 의미를 구성하고 판단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 전체를 외주화하는 일이다. 읽기를 잃으면 판단도 함께 잃게 된다. AI가 무엇이든 대신 읽어주는 시대일수록,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건 읽기 자체가 아니라 ‘읽으며 생각하는 능력’이다. AI는 소설을 요약할 순 있어도 찹스키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광고 로드중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