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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임수]탈모가 다시 불붙인 ‘건보 포퓰리즘’

입력 | 2026-06-25 23:12:00

정임수 정책사회부장


지난주 국내 증시에서 탈모샴푸 제조업체의 주가가 갑자기 상한가로 치솟았다. 보건복지부가 올 하반기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다. 이 회사 주가는 4년 전에도 뜬금없이 연속 상한가를 찍으며 동전주 신세를 벗어난 적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탈모약 건보 지원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내놨을 때다. 탈모와 포퓰리즘을 더한 ‘모(毛)퓰리즘’이라는 신조어도 이때 등장했다.

한동안 잊혔던 이 단어는 지난해 12월 이 대통령이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건보 적용 검토를 지시하면서 되살아났다. 당시만 해도 “생명이 오가는 의학적 치료와 연관성이 떨어진다”며 건보 지원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던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6개월 만에 한발 물러선 듯하다. 최근 간담회에서 “실무 검토를 마쳤다”며 국민 토론회를 거쳐 하반기 추진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20, 30대를 우선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된다고 한다.

중증·희귀질환 제치고 탈모 지원 맞나

잠재적 탈모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하고 탈모가 단순한 외모 고민을 넘어 정신건강은 물론이고 취업과 연애, 사회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보듬는 정부의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노화와 유전에 따른 M자형 탈모를 제외하고 원형 탈모, 지루성 탈모 같은 병적인 탈모는 지금도 건보 혜택을 받는다. 서울 성동구, 충남 보령시 등 일부 지자체는 일정 연령 이하 주민을 대상으로 매년 20만∼50만 원의 탈모 치료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탈모 치료와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같은 선상에 놓고 건보 재정을 투입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고가 항암제를 비롯해 희귀질환 치료제, 만성질환 관리, 예방접종 등 급여화를 기다리는 과제가 쌓여 있다. 신약이 개발돼도 건보 적용이 안 돼 치료를 포기하거나 집을 팔아야 하는 중증·희귀 질환자가 수두룩하다. 중한 질병은 제쳐두고 건강과 생명에 지장이 없는 유전적 탈모부터 건보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질병과 미용의 경계에 있는 탈모가 질환이라면 비만이나 성장호르몬 치료, 여드름 치료, 치아 교정에도 건보 혜택을 주는 게 맞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악화 일로인 건보 재정 상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최신 추계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올해 적자로 돌아선 뒤 2035년엔 적자 규모가 39조5000억 원으로 커진다. 급속한 고령화로 건보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탓이다. 건보 곳간에 쌓아둔 비상금(누적 준비금)도 매년 7조∼8조 원씩 까먹어 2029년이면 바닥난다고 한다. 보험료를 올리거나 세금을 더 투입하지 않으면 건보 체제가 작동을 멈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탈모 치료까지 끌어안으면 건보 재정 파탄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3년 뒤 적립금 바닥… 재정 위기부터 막아야

탈모의 고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데, 청년층을 지원 대상으로 삼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을 향한 2030세대의 표심 이탈이 확인되자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탈모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과 실리를 중시하는 청년들은 알고 있다. 이런 복지 정책이 달콤한 선물이 아니라 훗날 자신에게 돌아올 보험료 인상 청구서나 세금 고지서라는 것을.

정부는 다음 달 4일 국민 200여 명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열고 탈모약 건보 적용을 논의한다고 한다. 건보 정책의 우선순위나 탈모 치료 효과에 대한 과학적 검증은 사라지고 소모적인 논쟁만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정부는 건보 재정에 미칠 영향과 의료적 타당성 등을 빠짐없이 공개하고 국민 동의를 얻어야 한다.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건보 제도의 혜택을 미래 세대가 누리게 하려면, 지금 필요한 건 탈모 보장 확대가 아니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이다.



정임수 정책사회부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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