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차기 한국정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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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서울 송파구 등 전국 26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일부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주권자의 소중한 참정권이 선거관리 부실로 인해 제대로 행사되지 못했다. 이에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이 시위가 장기화되며 체육계, 공연업계 등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명성 결여와 경직된 조직문화가 빚은 선거관리 실패에 있다. 투표소별 특성을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인쇄 비율 하한선인 50%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와 공개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부작용에 대한 내부 토론과 현장 의견 수렴 없이 중앙선관위 사무처의 판단이 일방적으로 관철된 점도 문제였다. 여기에 당일 투표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도 잔여 수량 파악이 미흡했고,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과 현장 대응 체계마저 부재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물량 산정 오류뿐 아니라 위험신호가 조직 내부에서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고, 문제 제기가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못한 구조적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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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공정성과 독립성의 토대 위에 행정적 정확성과 절차적 투명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있다. 선거관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국민의 주권 행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한 치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판단, 그리고 국민 누구나 전 과정을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실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 사전투표처럼 선거 당일 모든 투표소에 투표용지 발급기를 전면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당장 전면 도입이 어렵다면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여 예측 실패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 선거 당일 투표와 개표를 동시에 관리하는 현행 방식이 현장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만큼, 개표를 선거일 다음 날 정규 근무 시간에 하거나 즉각적인 득표 계산과 예산 절감 효과가 큰 자동개표 투표함 도입도 검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선관위 내부의 인적 쇄신과 조직문화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중앙선관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과 사무처 간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경직된 조직문화를 과감히 바꾸고,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상임직으로 발탁해야 한다. 동시에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이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문책이 이뤄져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공정성과 독립성이라는 대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투표용지 한 장의 무게를 무겁게 여기는 정확하고 투명한 선거관리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선거행정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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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차기 한국정치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