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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생 생활만 8년, 아이돌 활동은 1년… ‘망돌’의 ‘직장인’ 데뷔기

입력 | 2026-06-24 04:30:00

‘망돌의 이력서’ 저자 이상현 씨
2014년 ‘BTL’ 멤버 ‘큐엘’로 데뷔했지만 1년만에 팀 해체… 오디션 프로도 떨어져
“고시텔-아르바이트 전전하다 대학 복학”… ‘악바리 근성’으로 학과 수석-대기업 취업
“아이돌 꿈도 좋지만 그다음도 생각하길… 한번 끝, 인생 끝 아냐 ‘망돌’에도 희망 있어”



18일 이상현 씨에게 아이돌 시절 포즈(왼쪽)를 부탁하자 그는 “10년도 더 돼서”라며 멋쩍게 웃더니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 촬영에 집중했다. “‘망돌’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도전했던 사람들이에요. 실패의 서사는 다른 자리에서 반짝인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귀하는 이번 프로그램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101명의 연습생이 아이돌 데뷔를 두고 경쟁하는 케이블 채널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2017년 어느 날, 첫 녹화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한 청년이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미 8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고, 2014년 아이돌 그룹 BTL 멤버 ‘큐엘’로 데뷔했지만 소속사 사정으로 1년 만에 팀이 해체된 경험을 한 이였다. 한데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던 오디션마저 물거품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 ‘인생도 함께 해체된 것’ 같았다.

‘망돌’(망한 아이돌)이라 불리던 청년은 9년이 흐른 지금 에치와이(옛 한국야쿠르트) 홍보마케팅팀을 거쳐 S사에서 AI(인공지능)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7년 차 직장인이 됐다.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망돌의 이력서’(애플북스·사진)를 펴낸 이상현 씨(34)를 1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꿈을 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씨는 “계약 해지 직후 몇 날 며칠을 고시텔 침대와 바닥 사이에 머문 채 지냈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꿈도, 사소한 계획도 없었다. 현실과 톱니를 맞추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시텔 근처 식당 TV에서 다른 그룹으로 다시 데뷔에 성공한 동료의 얼굴을 볼 때면 ‘나만 꿈을 놓은 건가’라는 미련이 가슴을 쳤다.

이 씨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건 스물여섯 살 때였다. 부모님이 “대학만 들어가면 응원하겠다”고 했던 터라 입학은 해뒀지만, 연습생 생활 때문에 1학년 1학기만 마친 채 휴학을 반복한 학교였다. 더는 집 안에 웅크리고 내일을 유예할 수 없었다. 복학 당시 그가 고시텔 벽에 붙인 목표는 의외로 소박했다. ‘결석 없음.’

“일단 수업에 빠지지 말자. 그것부터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시작한 첫 학기 성적은 전 과목 ‘A+’. 과 수석까지 차지했다. 아이돌 시절 몸에 밴 ‘악바리 근성’이 발휘됐다. 학점은 겨우 끌어올렸지만 취업은 또 다른 서바이벌이었다. 토익 점수도, 교환학생 경험도, 인턴 경력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어떤 면접관은 “궁금해서 한번 불러봤다”고 말하곤 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동안은 자신도 그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수십 번의 탈락을 반복하고 어느 순간 생각을 바꿨다. 아이돌 경력을 문제 삼을 수 없을 정도로 준비해 보자고. 에치와이 영업관리직 서류에 합격한 뒤에는 면접을 준비하며 현직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현장 이야기를 듣고, 업무를 공부했다. 그러자 면접장에서 늘 따라다니던 “왜 아이돌을 그만뒀나요” 같은 질문도 사라졌다.

입사한 뒤 첫 근무처였던 시장개척팀에선 자칭 ‘야쿠르트 아저씨’가 되어 연습생 시절 오디션장을 찾아다니듯 병원 밀집 상권을 돌며 같은 시간에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서울 강남 지역 영업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이 씨는 “도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거나, 진로 때문에 막막한 친구들이 있다면 정말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현직 아이돌이나 연습생 후배들에게도 조언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교가 아니더라도, 아이돌을 그만두게 됐을 때를 대비한 뭔가는 있어야 하고요. 요즘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면 성공하기가 정말 어려워졌잖아요. 꿈을 향해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다음도 생각해야 해요.”

그는 ‘망돌’이라는 단어를 꼭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저는 그 단어 안에 희망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 끝났다고 해서 인생까지 끝나는 건 아니니까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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