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예비문화유산〈중〉 “밤 길고 추위 시작… 국민 기대 큼” 동식물-지질 등 조사 내용도 담겨 대원들이 입었던 방한복도 선정
1988년 파견된 남극세종과학기지 ‘제1차 월동대’. 극지연구소
1988년 2월 5일, 한국의 송원오 남극세종과학기지(세종기지) 건설단장은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 전진을 준비하던 장순근 월동대장에게 이런 텔렉스(국제 문자 송수신 시스템)를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지 연구기지인 세종기지 준공을 앞두고, 송 단장은 대원들이 어느 선박을 기다렸다가 누구를 만나면 좋을지 등을 구체적으로 조언했다.
“최신 정보를 수집하라”는 거듭된 당부의 최종 목표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 진입. 당사국은 남극에서의 연구와 생물자원 활용 등에 관한 조약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한창 나라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페달을 밟던 한국인들에게 이는 넘어야만 하는 관문이었다. 통신문이 오간 이듬해, 우리나라는 남극에 관한 연구 성과를 올리며 23번째 ATCP 당사국으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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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근 월동대장이 쓴 일지. 일지엔 일과와 조사 계획, 심리 상태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총 4권으로 이뤄진 ‘장순근 노트’엔 물품 수급 계획 등 공무와 관련된 내용은 물론이고 대원들의 건강 상태나 심리 변화, 식단까지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기지 주변의 동식물과 지질 환경, 외국 기지를 조사한 내용도 담겼다.
월동대원들이 입었던 낡고 두꺼운 방한복도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극한 환경 속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갔던 책임감과 사명감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예비문화유산은 만들어진 지 50년이 안 된 문화유산 중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대표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선정해 관리하는 제도로, 지난해 처음 10건이 일괄 선정됐다. 올해 말경 두 번째 목록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