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영산동 ‘영산포등대홍어’의 흑산도홍어 정식. 1인에 4만5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홍어를 처음 맛본 순간부터 마니아가 돼버린 내게 ‘홍어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전남 나주시 영산포 방문은 자연스러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드디어 그 원을 풀었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두 시간이면 닿는 나주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불과 5분이면 영산포홍어거리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매캐하고 퀴퀴한 홍어의 곰삭은 내가 코를 찌르는 걸 보면 여기가 홍어의 본고장이 맞구나 싶다. 이 거리에 들어선 홍어 전문점만 50여 곳에 이른다.
영산포는 어떻게 홍어의 원적지가 됐을까. 고려 말 왜구의 출몰로 삶의 위협을 느낀 흑산도 주민들이 뭍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 닿은 곳이 영산포였다는 데서 유래됐다.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배에 싣고 올라오는 동안 자연 발효돼 오늘날 특유의 삭힌 홍어가 된 것이다. 그러니 자그마치 역사가 수백 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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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흑산도홍어 한 점을 현지식대로 소금만 찍어 먹어보았다. 씹을수록 기분 좋게 코를 쏘면서 깊어지는 감칠맛이 역시 본고장의 홍어다웠다. 고단백 식품인 홍어는 체내에 요소를 품고 있는데 이 요소가 숙성되는 과정에서 암모니아가 만들어지면서 특유의 향미가 생긴다. 다음으론 선도가 유지돼야만 맛볼 수 있다는 애를 기름장에 찍어 먹어보았다. 넣자마자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풍미가 안키모(아귀 간)나 푸아그라를 능가하면 능가했지 덜하지 않다.
이제는 삼합을 먹어보기로 했다. 영산포 사람들은 삼합을 김에 싸 먹는 게 특징. 그래서 김 위에 홍어 한 점, 돼지고기 수육 한 점, 묵은지를 올리고 초고추장을 듬뿍 찍은 마늘을 그 위에 곁들여 입안에 넣었다. 입안을 가득 채운 내용물을 오물오물 씹으면 홍어 특유의 맛을 돼지고기의 고소한 맛이 살짝 중화시키면서 훨씬 풍요로운 맛이 나온다. 조금 애매하게 숙성된 묵은지 맛이 살짝 아쉬웠지만 삼합도 만족스러웠다.
홍어는 가열하면 할수록 암모니아의 향미가 강해지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찜과 전, 튀김 등을 먹어보니 삭힌 홍어를 그대로 먹을 때보다 훨씬 강하게 코를 찔러 오는 걸 느낄 수 있다. 영산포등대홍어에서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홍어껍질로 묵을 만들어 상에 올리는데, 신기하게도 돼지 머릿고기처럼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맛이 제법 인상적이다.
아무려나 영산포홍어를 영산포에서 먹는 건 역사와 자연을 함께 몸에 새기는 일이다. 골목마다 홍어 냄새가 깊이 밴 영산포가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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