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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방위를 오방색으로 풀어내다… 단청이 담아낸 동양의 세계[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입력 | 2026-06-17 23:00:00

건물 장식 넘어 세계관 담은 단청, 다섯 색으로 시공간의 질서 그려
자연 모방해 붉은 기둥-푸른 천장… 단청이 공간에 안정감 주는 방식
中 역사건물에 韓 공간 연출하며… 해법은 동아시아 ‘색채 문법’ 단청




전통 색채 예술인 단청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공간 디자인에 활용된다. 경복궁 경회루 1층 필로티 천장. 반복되는 문양과 색채가 공간감을 만든다. 사진 출처 국가유산청

《한중일 잇는 색채 예술, 단청

단청(丹靑)은 전통 목조건축물의 부재에 여러 빛깔로 다양한 문양과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본래 단청은 궁궐과 신전, 고대 무덤의 벽화나 부장품의 문양처럼 왕실이나 종교 의례에 쓰이는 건물과 물건을 일반적인 것들과 구분하기 위한 장식이었다. 빗살무늬토기에서 보듯 문양은 문명 시작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문자, 회화, 공예 등의 시작점이 됐다.》


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단청은 단지 아름답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염원해온 내세와 근원에 대한 갈망의 표현 방식이다. 단청은 음양오행 사상과 깊은 연계를 가지고 있다.

단청의 기본이 되는 색상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의 다섯 가지로, 이것을 ‘오방색’이라고 한다. 여기서 ‘방(方)’은 방위를 뜻한다. 청색은 동, 적색은 남, 백색은 서, 흑색은 북, 황색은 중앙을 표현한다. 동서남북은 해가 동쪽에서 떠 남쪽 하늘을 지나 서쪽으로 지는 운행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 동시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도 상징한다. 이를 종합하면 오방색은 시간이자 방위다. 즉, 오방색은 동양에서 시공간을 인식하는 기호이자 표현 방식인 것이다.

태극기 역시 오방색 가운데 황색을 제외한 적·청·백·흑 네 가지 색을 담고 있다. 태극의 적색은 양의 에너지로 존귀함을 표현하고, 청색은 음의 에너지로 희망을 상징한다. 흰색 바탕은 순수함을, 건곤감리의 검은색은 강인함을 뜻한다.

전통건축에서 기둥은 붉은색을 칠하고 상부 지붕 부재는 청색을 칠하는 원칙을 상록하단(上綠下丹)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무를 그릴 때 줄기에는 흙과 유사한 붉은색을 사용하고, 잎에는 녹색을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채색은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 안정감을 준다.

종묘 정전. 문양 없이 바탕색만 칠한 가칠단청이 적용됐다. 사진 출처 국가유산청

시각적으로 천장의 녹색은 내부를 밝고 선명하게 느끼게 하고, 기둥에 칠하는 붉은 계열의 색은 땅과 연속돼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기능적으로도 붉은색 계열의 단청은 철분이 많아 햇빛과 비바람에 대한 내구성을 높인다. 하늘을 뜻하는 지붕의 청색은 음의 에너지이고, 땅을 의미하는 기둥은 양의 에너지이다.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지만 단청은 둘을 바꿔서 역을 취했다. 이것은 자연과 건축 간 음양의 순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단청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음양오행의 철학을 공유하면서도 각국의 자연환경과 민족성,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단청의 시작은 중국 한나라부터로 알려져 있다. 백제와 일본의 단청 교류와 관련해서는 5세기 이후 꽤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중국 항저우의 한국 미슐랭 레스토랑 ‘세븐스 도어(7th Door)’. 한옥 공포(栱包) 구조와 단청의 색채 원리를 재해석했다. 사진 출처 김동규 작가

얼마 전 역사 도시이면서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인 항저우에 있는 한국 미슐랭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설계를 맡았다. 이 건물의 일부는 중국 근대 등록문화재다. 한국적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기존 건축과의 조화가 필요했다. 한국과 중국이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교집합은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는 단청이었다. 종이나 기와처럼 물성(物性)이 강한 건축 요소는 각 나라의 지역성을 강하게 드러내지만,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색채 체계와 상징성을 담고 있는 단청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공유돼 왔다. 실제 안료와 기법 또한 한중 양국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단청 디자인에 영감을 준 두 건물이 있다. 그중 하나는 경복궁에 있는 경회루다. 경회루 1층 필로티 공간의 천장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며 무한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2층 중앙 방 천장은 청색과 붉은색 바탕 위에 자주색이 더해져 깊은 공간감을 만든다. 단청이 만든 회화적 공간감은 실제 공간에 더욱 깊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조선 왕실 제례 공간인 종묘다. 종묘는 화려한 채색 대신 가장 소박한 형태의 가칠단청으로 마감돼 있다. 가칠단청은 선이나 문양 없이 부재의 표면에 바탕색만 칠하는 가장 단순한 단청이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오히려 강한 절제미를 만들어낸다.

중국 항저우의 한국 미슐랭 레스토랑 ‘세븐스 도어(7th Door)’. 한옥 공포(栱包) 구조와 단청의 색채 원리를 재해석했다. 사진 출처 김동규 작가

레스토랑 1층에는 ‘ㄷ’자 형태의 바 테이블을 배치하고, 기존 건물 구조상 철거할 수 없는 기둥을 공간의 중심으로 디자인했다. 이 기둥 상부를 한옥의 공포(栱包·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부재) 구조로 재해석해 만든 후 단청 색인 자주색과 녹색을 입혀 공간의 상징적 요소로 만들었다. 2층 세 개의 룸 천장은 나무 널판으로 구성하고 넓은 면을 청색으로 칠했다. 판과 판이 만나는 틈에는 깊이를 주고 붉은색을 입혔다. 반대로 복도는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고 틈 사이는 청색으로 채웠다. 1층 리셉션, 2층 복도 벽과 창은 한국에서 공수한 한지 창을 적용하고 따뜻한 회색으로 마감했다. 강렬한 단청과 고요한 벽, 바닥의 대비 역시 음양의 개념을 공간에 적용했다.

이 미슐랭 레스토랑은 단청이라는 색채 조형 언어를 통해 한국성과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함께 담았다. 역사적 건축 안에서 단청은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지의 문화적 맥락을 존중하고 두 문화를 잇는 매개체가 됐다.



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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