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내가 하는 일은 글쓰기였다. 글 쓰는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망망대해 같은 생각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고민한다. 글감을 찾고, 경험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며 거듭 퇴고한다. 사유의 바다를 허우적거려야만 겨우 독자에게 건넬 만한 글을 완성할 수 있다. 글쓰기에 요령은 없다.
‘비효율적인 생산성’이라는 취약점을 가진 작가라서 앞날이 두려웠다. AI 활용법을 공부하고 나를 증명해야 했다. 작가의 자산을 분석하고, 포지셔닝 전략을 세우고, 집필 로드맵을 작성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며 깨달았다. 나의 취약점은 생산성이 아니라, 상실감이었다. 불안과 속도에 내쫓겨 뭐라도 써내야 한다는 강박은, 경험해 보고 고민해 보고 실수해 볼 기회를 앗아갔다. 작은 실패에도 낙담하며 회복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마음으로 글쓰기를 가르치자니 더욱이 혼란스러웠다. 글쓰기의 효용을 AI처럼 명료하게 제시할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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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한 글자 이어 쓰는 데에도 전전긍긍. 간절함과 초조함과 망설임과 부끄러움이 스며든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시끄러운 그늘 속에서도 반짝이는 그 사람만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작은 목소리로, 에둘러 삶을 이야기하는 글에는 마음이 흔들리고야 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대단한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매일 새벽 선로를 달리는 기차처럼 글을 쓰고 싶으신 거죠?” 내 말에 학인이 울었다. 수업에서 가장 씩씩한 얼굴로 속마음을 숨기던 사람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말해 주었다. “계속 써도 괜찮아요. 그런 마음이 정말로 소중한 거예요.”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처럼.
나에게 글쓰기는 몸으로서의 경험이었다. 바깥세상으로 나서는 걸음, 누군가와 주고받는 말들, 작은 것들을 발견하는 눈길, 해답 없는 자문자답을 이어가는 머리, 펜과 키보드를 움직이는 손길. 부지런한 몸으로 길을 헤매며 쓰다 보면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살 수 있었다. 그런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천천히 누군가를 돕는다.
수업을 마치고 밖을 나섰을 때, 모르는 새 우거진 푸르른 풍경이 새로웠다. 흔들리며 견뎌낸 조용한 것들, 자기다운 삶들. 이런 만남은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무엇이라도 쓰고 싶게 한다. 길을 잃어서 다행이었다. 헤매는 것만이 우리가 모르던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이니까. 새벽 기차처럼 나도, 어둠을 헤치며 만나보고 싶었다. 모르는 세상으로 다시 출발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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