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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왕과 내시는 궁궐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사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오히려 섭생이나 의료 측면에서는 임금이 훨씬 많은 혜택을 입었을 텐데 말이다. 왕과 내시의 가장 확연한 신체적 차이는 번식력이다. 왕은 자손을 낳는 게 절대적 사명이자 의무였고, 내시는 번식력이 제거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정기(精氣)의 사용(남용) 여부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동의보감은 정기에 대해 “정(精)은 쌀 미(米) 자와 푸를 청(靑) 자를 합해서 만든 것으로 아주 좋은 뜻”이라며 “사람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목숨이며 아껴야 할 것은 몸이고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은 정”이라고 정의한다. 이어 “정기가 자신에게 머물면 자신을 살리고, 남에게 정기를 베풀면 아이가 생긴다(유기즉생기 시인즉생인·留己則生己 施人則生人)”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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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골로 악명을 떨친 연산군이 31세의 나이에 요절한 것도 정기를 함부로 누설한 결과였다. 절의 비구니들을 겁탈하고 흥청을 만들어 전국의 기생들과 놀아난 것은 물론이고 중종반정이 있기 두 달 전에는 큰아버지 월산대군의 부인까지 겁탈했다. 반정 후인 중종 1년 11월 8일, 연산군이 31세 되던 날 실록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기록했다. “초 6일에 연산군이 역질(疫疾)에 걸려 죽었다. 죽을 때 다른 말은 없었고 다만 신씨를 보고 싶다 하였다.” 거창군부인 신씨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됐으나 중종반정 이후 폐위됐다.
연산군을 죽인 역질, 즉 역병은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병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대표적 질환이다. 동의보감의 ‘유기즉생기 시인즉생인’ 구절처럼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면역력(정기)을 남에게 함부로 써서 스스로를 무너뜨린” 대표적인 경우다.
인체는 국가 예산처럼 생명물질을 나눠 쓴다. 국가가 교육, 정보, 국방, 경제에 예산을 분배하듯 인체 또한 면역, 신경, 생식, 성장에 생명물질을 나눈다. 많은 생명물질을 한 번에 쏟아 성장이 빠른 채소는 쓰거나 맵거나 한 독소가 적고, 천천히 늦게 자란 식물에는 이런 독소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독소는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든 면역력으로, 작은 고추가 매운 이유는 천천히 자라면서 자신의 면역력인 매운 독소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인체도 새 생명을 만드는 생식물질을 많이 소비하면 면역물질을 만드는 힘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은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잘 해내기 힘들다. ‘모든 생명 유지의 뿌리는 정(精)이고 그것을 잘 보존해야 오래 산다’는 게 동의보감의 건강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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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