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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베 버튼-버스 손잡이도 못 견디는 ‘오염 강박’…트럼프도 앓아

입력 | 2026-05-02 10:00:00

‘깔끔한 성향’과 다른 정신적 질환
스스로 조절 어려워 손씻기 등 반복
가족-주변 사람에도 강요…갈등 유발
전두엽 담당 ‘억제력’ 약화되면 증상
늦기 전에 인지-약물치료 병행해야



손 씻기.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김모 씨(38)는 퇴근한 뒤 집에 들어오면 곧장 욕실에서 손을 씻는다. 그리고는 그날 입었던 옷을 빨래통에 모조리 벗어둔다. 그는 밖에서 입었던 옷을 입곤 절대로 침대는 물론 소파에도 앉지 않는다. 그 옷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견디지 못한다.

휴대전화 등 밖에서 사용했던 물건을 소독하는 것도 귀가 루틴 중 하나다. 김 씨는 샤워에만 30분 이상을 할애한다. 피부과 전문의가 권고하는 샤워 시간은 약 5분. 집 밖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퇴근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는 에스컬레이터나 버스 손잡이는 되도록 만지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위한 도구는 따로 가지고 다닌다. 소독티슈와 손 세정제도 외출 필수템이다. 주변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길 때마다 김 씨는 “청결한 게 나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 트럼프도 ‘오염 강박’ 심해…가족들은 피로감 호소

김 씨의 이러한 행동은 강박장애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오염 강박’ 증상이다. 의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흔히 ‘결벽증’으로도 불린다. 깔끔한 성향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더러워지거나 병균이 옮겨져 감염될 것이란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강박 사고’로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본인이 원치 않아도 자꾸 떠올라 조절하기 어렵다. 이에 불안을 해소하고자 손을 반복적으로 씻거나 샤워를 장시간 하는 ‘강박 행동’을 보인다.

불안을 줄이기 위한 반응이지만 실제 위험에 비해 과도한 경우가 많다. ‘강박증’ 진단의 핵심 기준은 이처럼 불안과 반복성이다. 오염 강박 외에도 문을 잠갔는지 반복 확인하는 ‘확인 강박’, 물건을 특정 방식으로 정리하는 ‘정리 강박’,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저장 강박’ 등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개그맨 오정태의 부인 백아영이 호텔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SBS ‘동상이몽’ 갈무리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강박장애의 유병률은 약 2% 수준이다. 증상의 경중은 다르지만 100명 중 2명이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경험하게 된다. 현재까지 나온 연구에 따르면 강박장애는 뇌피질-선조체-시상-피질을 잇는 회로가 취약한 상태에서 심한 스트레스가 더해질 경우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 기능과 관련된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권준수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는 “피질, 특히 전두엽의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억제력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전두엽에서 원치 않는 생각을 억제한다. 하지만 이 억제하는 힘이 약하면 원치 않는 생각과 불안을 낮추는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명인들 중에서도 ‘오염 강박’으로 알려진 이들이 있다. 개그맨 오정태의 부인 백아영은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호텔에 입실한 직후 청소하는 모습을 공개했는데, 깔끔하기로 소문난 방송인 서장훈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는 이미 정돈된 객실을 휴대용 청소기로 다시 훑고 침대에는 살충 시트지를 부착했다. 또 소주로 냉장고 등을 닦고, 객실에 비치된 플라스틱 생수병 겉면을 물로 세척했다. 베이킹소다로는 화장실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스로를 ‘세균혐오자’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에 손님이 오면 화장실에 가서 손부터 씻길 권하고, 악수한 뒤에는 손 세정제로 소독한다. 백악관에 입성한 대통령은 ‘퍼스트 펫’을 두는 전통을 깨고 트럼프 1기 때부터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고 있다. 

오염 강박은 함께 사는 가족에게 상당한 피로를 안긴다. 구성원에게도 ‘청결’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결혼 3년차 최모 씨(35)는 “와이프가 손 씻는 걸 지나치게 강요한다”며 “귀가 후에 손을 씻는 건 당연하지만, 냉장고를 만지기 전후나 그릇을 꺼내기 전후에도 손을 씻길 원한다”고 했다. 이어 “장을 볼 때는 마트에 있는 공용카트를 소독하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구매한 물건을 물로 씻거나 새 비닐이나 그릇에 옮겨 담고서야 냉장고·펜트리에 집어넣는다”고 했다. 택배는 현관 밖에서 개봉하고, 물품만 집 안으로 들여온다. 그는 “가끔 부모님이 오시면 소파에 천으로 된 커버를 덮어두고 부모님이 가신 뒤 커버를 세탁한다. 손잡이 등도 소독티슈로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최 씨는 “집에 있는 게 편치 않다”고 토로했다.

● 우울증 치료보다 오래 걸려 “빨리 치료받는 게 중요”

손 소독제. 게티이미지뱅크


강박증 환자 수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강박증’ 진료인원(입원·외래)은 △2020년 3만2824명 △2021년 3만6913명 △2022년 4만449명 △2023년 4만2630명 △2024년 4만3879명이다. 2024년 기준 전체 환자의 과반이 20대(29.3%)와 30대(21.3%)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았다. 치료를 꺼리거나 제때 인지하지 못해 치료를 받기까지 최대 10년가량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권 교수는 “치료가 늦어질수록 증상이 더 악화되거나 만성화될 수 있다. 빨리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며 “하루에 보통 1시간 이상 강박 증상으로 인해 불편을 느낀다면 치료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오염 강박’ 치료법에는 인지행동과 약물 등이 있다. 인지행동 치료는 잘못된 생각을 교정시키고 불안을 견디는 훈련이다. 손을 자주 씻는 사람에게 손을 바로 씻지 못하게 하는 것. 권 교수는 “처음에는 찝찝하고 불편한데 10분, 20분, 30분이 지나면 불안이 줄어든다. 그런 훈련을 자꾸 하다 보면 좋아진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경험을 통해 강박 행동을 줄여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증세가 약하다면 관련 서적만 읽어도 불안이 줄어들어 호전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반면 증세가 심하다면 약물 치료를 권장한다. 약물 치료는 반복적인 충동과 불안을 줄이고 뇌의 조절 기능을 돕는다.

하지만 ‘오염 강박’ 관련 커뮤니티 등에선 “완치가 안 될 것 같다” “치료가 더딘 느낌” 등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권 교수는 “강박증은 우울증보다 고용량의 약물을 사용하고도 두세 달은 지나야 조금씩 좋아지는 등 치료에 시간이 꽤 걸린다”고 했다. 신경전달물질이 수용체에 작용하는 과정을 ‘열쇠와 자물쇠’에 비유하면, 수용체 변화가 단단하게 굳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열쇠를 돌려도 자물쇠를 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약물만으로는 약 60% 정도 호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약물로 어느 정도 호전되면) 인지행동 치료도 함께 꾸준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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