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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잠시 열린 틈에…드론·미사일 뚫고 필사의 탈출

입력 | 2026-04-23 19:57:00

경유 30만 배럴 실은 소형 덴마크 유조선
이란 일시 개방 선언하자 기뢰 위험에도 진입
일부 선박은 위치추적 피하려 GPS 끄고 이동
새벽 빠져나오자 혁명수비대 고속정 다시 통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발이 묶인 벌크선과 유조선들이 18일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해 있다. AP뉴시스


호르무즈 해협이 잠시 열린 틈을 타 필사의 탈출에 성공한 유조선의 사연이 전해졌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경유 30만 배럴을 실은 소형 유조선 ‘아크티 A’호는 바레인 인근 해역에서 수 주간 발이 묶여 있다가 지난 18일 새벽 해협을 빠져나왔다. 이 선박이 위험 구간을 통과한 직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고속정을 투입하며 다시 통제에 나섰다.

당시 아크티 A는 이란이 해협을 “완전히 개방했다”고 잠시 밝힌 직후 페르시아만을 빠져나가려는 선박 행렬의 선두에서 움직였다. 덴마크 선사 머스크 탱커스가 운영하고 원자재 트레이딩 업체 비톨의 화물을 실은 이 선박은 주변에서 다른 선박들이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받는 상황 속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이 배의 타이밍은 절묘했다. 위험 구간을 통과한 직후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고속정을 해협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무사히 호르무즈 해협을 탈출한 아크티A는 현재는 희망봉을 향해 항해 중이다.

FT는 “글로벌 에너지 트레이딩 업체들에겐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유조선을 어떻게 빼낼지가 이번 전쟁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라며 “보험료, 선박 유지비, 추가 항만 비용 등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 인명 피해도 이어졌다. 지난달 12일에는 비톨 화물을 운반하던 선박이 공격을 받아 승무원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전쟁이 8주째 이어지는 동안 해협은 간헐적으로 열렸다가 다시 봉쇄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통과에 최대 8시간이 걸리는 특성상, 이동 중 외교·군사 상황이 급변해 탈출이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이란은 최근 컨테이너선 3척을 공격하고, 이 가운데 2척을 나포해 자국 영해로 이동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에 대한 보복 성격으로 해석되며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전쟁 이후 첫 나포 사례가 된다.

선박들이 통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는 지난주 이란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휴전 발표에 대응해 해협을 “완전히 개방했다”고 밝힐 당시였다. 선주들은 기뢰 위험 경고에도 불구하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 항구 봉쇄를 유지하자 이란군은 곧바로 해협 통제 방침을 재확인하며, 혁명수비대 승인 선박만 안전 통과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선박은 공격 위험 때문에 회항하거나 유턴했다. 프랑스 해운사 CMA CGM 소속 선박은 피격 이후 이동을 중단했고, 아크티 A가 이끈 선단에서도 후미 선박들이 이란 측 경고를 받고 방향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안전하게 통과한 선박은 아제르바이잔 국영 석유회사 소카르의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었다. 이 화물은 큰 수익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탈출 전략은 다양해지고 있다. 오만, 파키스탄, 중국 등 이란과 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인 국가와 연계된 선박은 상대적으로 통과가 수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만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방식도 활용됐다.

하지만 글로벌 트레이딩 기업들의 상황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트라피구라는 전쟁 발발 당시 10척이 묶였으며 현재도 9척이 해협 내에 남아 있다. 트라피구라가 탈출시킨 선박은 오만 소유의 ‘달쿠트’로, 오만과 연계된 선박 3척과 함께 지난 2일 탈출했다.

일부 선박은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 GPS 신호를 끄고 이동하기도 했다. 실제로 MSC 계열 선박 여러 척이 신호를 차단한 채 해협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머큐리아의 물류 책임자 래리 존슨은 각국 정부의 대응 부족을 비판하며 “정치권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안이 없다”며 “정부 소유 선박은 군사력이나 외교 채널을 활용할 수 있지만, 민간 상선은 이를 활용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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