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명주 명지대 건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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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부문 탄소 중립 정책은 그동안 단열을 강화하고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며 설비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해 왔다. 물론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서울과 같은 고밀도 도시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제는 그 접근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노후 건축물은 빠르게 늘고, 옥상 면적은 제한적이며, 일조 여건도 넉넉하지 않다. 이런 도시에서 모든 건물이 각자 에너지를 자립하라는 방식은 현실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 개별 건물 단위의 제로에너지 접근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도시 전체의 탈탄소 전환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제는 개별 건물의 성능 향상을 넘어, 전기와 열을 함께 연결하고 순환시키는 도시 차원의 해법으로 시선을 넓혀야 한다.
이제껏 우리 사회가 놓쳐온 것은 ‘열’이다. 전기에 비해 덜 주목받아 왔지만, 열은 도시 에너지 소비의 큰 축을 이룬다. 열에너지는 국내 최종 에너지 소비의 48%를 차지하고, 건물 부문에서도 난방과 급탕 등 열 수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특히 건물 부문은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56.2% 감축해야 하는 만큼, 열 부문의 에너지원 전환 없이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 이제 열은 보조 변수가 아니라 탄소 중립의 핵심 인프라다. 하나의 도시 안에서도 열 수요는 같지 않다. 신축 건축물은 낮은 온도의 난방열로도 충분하지만, 단열 성능이 낮은 기존 건축물은 더 높은 온도의 열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소비체에 동일한 온도의 열을 획일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건물의 난방과 급탕, 산업 공정, 지역 냉난방까지 도시 곳곳에서 막대한 열이 오가지만, 많은 열은 회수되지 못한 채 버려진다. 데이터센터 폐열, 하수열, 소각열, 산업단지의 미활용열은 이미 존재하는 자원임에도 도시 시스템 안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열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을 잇는 구조가 부족한 것이다.
유럽연합도 2024년 전면 개정한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을 통해 건물 정책의 기준을 ‘에너지를 덜 쓰는 건물(Zero Energy Ready Building)’에서 ‘탄소배출 제로 건물(Zero Emission Building)’로 끌어올렸다. 이는 건물의 운영 과정에서 화석연료 연소를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사실상 제로로 만들겠다는 방향 전환이다. 이런 전환이 바로 녹색대전환(GX)이다.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에너지와 산업, 생활 방식 전반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건물 부문의 탈탄소화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열 수요를 줄이는 계획과 자재 선택, 그리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열을 공급받는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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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주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