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버팀목 사우디의 참전 요구 묵살 어려운 처지… 자기가 살기 위해 동분서주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 국방총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왼쪽)이 4월 15일(이하 현지 시간) 테헤란을 방문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회담했다. 뉴시스
중국‧러시아, 이란에 군사 지원 움직임
미국과 이스라엘, 나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은 “이번에 이란 독재 정권을 끝장내야 핵무기와 친이란 민병대와 같은 불안 요소를 없앨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한 달 이란에 대규모 공습을 가한 미국이 제82공수사단과 2개 해병원정대 등 1만 명이 넘는 대규모 지상군 병력을 이란 주변에 배치하고 있는 것도 이런 판단에서다. 지상군을 투입해야만 이란 정권 교체라는 이번 전쟁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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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가 이란에 무기 및 정보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중국도 방공무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나라가 미국과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란에 대한 무기 지원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란 정권 붕괴 우려 때문이다. 미국이 지상전을 감행해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면 러시아와 중국은 에너지 통제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나아가 중동 정세를 둘러싼 미국과의 전략적 힘겨루기에서도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파키스탄 공군 J-10C 전투기. 뉴시스
파키스탄 총리, 군부 일인자 ‘종전 외교전’
같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파키스탄은 수니파가 다수이고, 이란은 시아파가 중심이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이란과 교전 상태인 사우디와 동맹이다. 이란과의 사이가 안 좋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튀르키예와도 정치, 경제, 군사적 협력 관계다. 2024년에는 파키스탄과 이란이 국경에서 서로 포격과 공습을 퍼부어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전쟁 발발 뒤 이란이 사우디를 공격하자 파키스탄은 “사우디와의 상호방위협정을 근거로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랬던 파키스탄이 지금 이란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확전을 막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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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정부는 파키스탄과의 협정에 대해 “어느 한 나라에 대한 공격 행위를 양국에 대한 공격 행위로 간주하기로 했다”는 정도 내용만 공개했다. 이 내용과 다른 정황을 보면 자동 개입 조항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이란이 사우디를 공격했을 때 즉각적인 군사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란은 미국의 공습을 받은 다음 날인 3월 1일 사우디를 공격했다. 파키스탄은 3월 3일이 되어서야 외무장관이 대이란 군사 조치 가능성을 경고했을 뿐 실제 무력행사는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4월 15일 인도 언론 인디아 투데이는 파키스탄 국방부에서 유출된 문건을 근거로 “두 나라 협정에는 사우디의 요청이 있을 경우 파키스탄은 군대를 파견할 의무가 적시된 반면, 사우디는 파키스탄에 대해 같은 의무를 지지 않는 대신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은 4월 10일 사우디 동부 킹압둘아지즈 공군기지에 주력 전투기 18대와 공중급유기, 수송기, 방공무기를 배치했다. 사진은 파병 당시 파키스탄 공군 C-130H 수송기 항적. Flightradar24 홈페이지 캡처
파키스탄, 사우디에 전투기 및 방공무기 배치
사우디의 요청에 따라 파키스탄이 전투기를 파병하자 사우디도 움직였다. 즉시 파키스탄에 재정 지원을 제공한 것이다. 최근 파키스탄은 외환위기 가능성에 시달리고 있었다. UAE 측이 파키스탄에 제공한 차관의 만기 연장을 7년 만에 처음 거부하면서 “4월 말까지 35억 달러(5조1800억 원) 전액을 상환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우디가 파키스탄 중앙은행에 예치한 50억 달러(7조4000억 원)도 만기가 도래한 터였다. 4월 기준 파키스탄 외환보유고는 164억 달러(약 24조2600억 원)인데, 절반이 넘는 85억 달러가 단번에 증발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이 사우디에 전투기를 보내고 나흘 후 사우디는 파키스탄 중앙은행 예치금 50억 달러를 3년 더 유지하는 것은 물론 여기에 30억 달러(약 4조4400억 원)를 추가로 예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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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파키스탄에 양동작전 압박할 듯
물론 사우디가 직접 지상군을 투입해 이란을 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사우디가 이란에 지상군을 보내려면 쿠웨이트와 이라크 영토를 통과해야 한다. 사우디 지상군의 핵심 전력은 남쪽의 예멘 접경 지역에 배치돼 있다. 이 전력은 유사시 사우디·이라크 국경에서 소란을 피울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와 싸워야 한다. 따라서 사우디는 지상군을 보내기보다 공군력을 투입해 미군의 대이란 지상 작전을 지원하는 형태로 참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파키스탄 역시 사우디의 이란 공습을 지원하는 한편, 이란 동부에서도 육군과 공군을 동원한 양동작전에 나서라고 압박받을 것이다. 국경을 맞댄 이란과 직접 교전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향후 사우디의 파키스탄에 대한 참전 압박은 더 강해질 것이다. 파키스탄은 사우디의 참전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참전에 뒤따르는 막대한 전비를 감당할 능력도 없다. 지금 이란 전쟁 종전을 위해 파키스탄이 가장 애타게 협상을 부르짖는 이유는 이란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서로 보인다. 다만 파키스탄의 몸부림이 미국과 사우디라는 ‘슈퍼 갑’이 작정하고 달려든 전쟁을 막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35호에 실렸습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