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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윤정]호르무즈가 일깨운 ‘핀치 포인트’ 전쟁

입력 | 2026-04-16 23:09:00

장윤정 산업1부 차장


호르무즈가 막히자 세계 경제가 멈춰 섰다. 사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막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이를 반복된 ‘위협’으로 여겼다. 과거 이란과 이라크 간 갈등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에도 호르무즈를 막지는 않았었기에 상당수가 흘려들었다. 전 세계 시장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실제로 봉쇄가 이뤄졌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가 마비됐다. 그 순간부터 숫자가 아니라 현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유 수급이 막히자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원유를 원료로 하는 나프타와 에틸렌, 이른바 ‘산업의 쌀’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석유화학과 플라스틱 산업이 휘청였다. 그 위에 서 있던 자동차와 조선 같은 제조업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하나의 자원이 끊기자 산업 전반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취약한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에너지에만 있지 않았다. 바닷길 자체가 막히면서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또 다른 충격에 직면했다. 수출기업들은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우회 항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단순한 경로 변경이 아니었다. 운송 기간은 길어지고 비용은 급증하며, 납기와 계약의 불확실성까지 커졌다. 수출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지금 ‘공급망 무기화’ 시대에 들어섰다는 점 말이다. 지난해 중국은 스마트폰 등 각종 첨단 제품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어 미국 산업계를 압박한 바 있다. 이번에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함으로써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가 미국을 상대로 한 ‘전초전’이었다면,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전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은 ‘본편’에 가깝다고 할까. 이제 국가는 군사력만이 아니라 공급망을 통해 서로를 압박한다. “나는 언제든 네게 필요한 것을 끊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강력한 무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더 두려운 건 공급망 무기의 위력을 알아버린 만큼 이번 전쟁이 끝나더라도 우리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주요 외신들은 이란이 미국과 중국에 이어 ‘경제적 병목 지점(pinch-points)’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국가 반열에 올라섰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국가들이 공급망을 인질로 삼아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이 게임에서 우리의 위치다. 우리는 원유와 원자재, 그리고 물류망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를 끊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는 무엇을 쥐고 있을까. 다른 나라가 “한국이 없으면 버티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가.

다행히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나라들이 의존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방산이라는 ‘무기 후보’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필수 불가결한 위치에 서지 못한다면 다음 위기에서도 우리는 또 흔들릴 것이다. 전쟁은 결국 멈추겠지만 공급망이 무기가 된 시대는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외풍에 시달리는 끊길 수 있는 나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 말고 대안이 있느냐”라고 물을 수 있는 ‘맷집’을 가진 나라로 바뀔 것인가. 



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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