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연극 ‘정희’… 상처를 흘려보내는 온기

입력 | 2026-04-17 04:30:00

[Culture]




연극 ‘정희’에서 정희가 생각에 잠겼다. 정희가 옛 남자친구 상원(겸덕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안과 대화하는 정희. 어린 시절 정희와 동훈, 상원.(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T2N미디어 제공



서울 후계동의 오래된 술집 ‘정희네’. 혼자 가게를 꾸리는 정희는 버텨내듯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인사하며 집을 나서고 싶고, 일이 끝나면 돌아갈 집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 술집 위층에 있는 방이 아니라. 

어느 날부터 세면대에서 물이 나오지 않고 바닥과 벽 곳곳은 물을 잔뜩 먹었다. 수도 배관이 낡아 오랜 기간 누수가 진행된 것. 친구 동훈의 소개로 젊은 수리공 가람이 찾아와 가게를 수리하기 시작하고, 정희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에 나온 정희의 이야기를 별도로 풀어낸 창작 연극으로, 초연이다. 드라마에서는 오나라 배우가 정희 역을 맡았다. 드라마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정희를 중심에 놓고 독립된 이야기를 만들었다. 

‘정희네’는 정희의 삶이 그대로 담긴 곳이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던 집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휑한 그 곳에 혼자 있기 힘들어 친구들을 불러 어울리다가 ‘정희네’를 열게 됐다.

이야기는 정희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밝았던 소녀가 할머니를 잃고, 온 마음을 쏟았던 남자친구 상원이 출가해 스님이 되면서 상처는 쌓이고 또 쌓인다. 그런 정희에게 세상 풍파에 온통 할퀴어진 지안이 의탁하게 된다. 

드라마처럼 연극 역시 사람 간의 관계와 감정을 세밀하게 짚어낸다. 누구나 제각기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묵묵히 비춘다. 정희, 지안, 스님이 된 겸덕, 그리고 가람. 이들의 고민과 면면에서 관객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극은 아프지만 다정하다. 삶이 버거운 이들은 다른 이를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밥을 같이 먹고, 수리를 함께 할 뿐이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온기를 머금은 순간들을 통해 상처를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향기로운 차를 마신 듯 여운이 남는다. 배우들은 고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극을 밀도 있게 떠받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들려준 가슴 울리는 대사들을 다시 음미하는 시간도 선사한다. 

정희 역은 이지현 오연아 정새별이 맡았다. 겸덕과 어린 상원은 이강우 김세환 이태구가 연기한다. 지안과 어린 정희 역에는 박희정 박세미 권소현이 발탁됐다. 가람과 어린 동훈은 허영손 강은빈이 연기한다.  

6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예스24 아트원3관.
14세 이상 관람가능. 6만 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